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운명적으로 비극을 맞게 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까지 속수무책 나락으로 빠진다. 그는 눈먼 예언자의 주장대로 선왕인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이자 왕비를 아내로 맞아 자식까지 두게 된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오이디푸스는 테베에 역병이 만연하자 드디어 원인을 백방으로 찾아보게 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 다름 아닌 바로 천륜에 반한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하는 형벌을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각성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각성은 비극에서 전제되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다. 독자나 청중은 이와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 보이는 비애감을 통해 한없는 연민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문학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여 감정의 정화를 통해 각성하게 하거나 교훈을 얻게 한다. 이런 문학적 효능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도 나타난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은 신탁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과 달리, 오만‧욕심‧질투‧집착 같은 인간의 편협함으로 파국을 맞는다. 즉 자신이 믿고 있던 가치나 신념이 무너지면서 인간 본연의 선과 악에서 겪는 갈등과 양심, 그리고 욕망 사이에서 내적 혼동으로 파국을 맞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파국이 독자나 청중들에게 연민을 갖게 하거나 감정의 정화를 가지게 하면서 비극으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의 각성이 있는 고전 비극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소위 비극 부재 시대의 코미디 같은 비극일 것이다. 대장동 비리, 입시 비리, 특검 농단 같은 사건들은 요지경 세상에서 일어나는 소극(笑劇)으로 보여진다. 윤리와 도덕과 양심이 사라진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해체되어 버렸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극의 핵심이랄 수 있는 주인공의 각성과 회한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오늘날 비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가 우리에게 더 이상 비극은 없다고 했듯이 비극의 개념 자체가 아예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주인공의 각성은 없고 온통 거짓과 선동만이 난무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고전 비극이 주었던 인간의 연민, 각성과 카타르시스가 사라진 작금의 인간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극 부재 시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실체도 없는 혹세무민의 광우병 괴담, 사드 괴담, 또한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을 괴담으로 유포하고 정쟁화하는 것도 비극 부재에서 오는 비극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런 비이성적인 선동과 비상식적인 세력이 득세하면서 우리 사회가 휘청거렸다는 것도 비극 부재에서 나타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오직 서글픔(悲)만 있고 성찰이나 각성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가운데 다수는 카타르시스는 고사하고 더욱 사악해지며 맹목적인 편향의 덫으로 함몰되고 있다. 정치꾼들은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보다 정쟁에 따라 사사건건 반목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함몰되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사죄는 고사하고 뻔뻔함을 넘어, 선동과 거짓으로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속죄하고 성찰하는 모습의 참회나 사과를 찾아볼 수 없다. 인면수심의 내로남불, 분열과 저주의 모습을 보고 있는 대중은 이념을 넘어 남녀, 세대, 계층, 빈부, 종교, 교육을 비롯한 일상에서 갈등의 깊이를 덩달아 키우고 있다.
고전 비극의 주인공들이 높은 신분이었듯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입시 비리, 사법 농단, 국정 농단은 모두 고위 공직자들이 만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 전혀 반성과 각성을 하지 않았기에 대중이나 청중의 연민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며 억울하다고 악을 쓴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성찰과 반성 없는 잘못은 안 된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의 높은 이상과 발전을 위해 거짓과 술수와 기만을 걷어내고, 공정과 상식이 자리 잡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더 이상 비극 부재 시대의 코미디 같은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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