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나 보던 작품을, 평생 한번 보기 어려운 작품을 고요한 공간에서 오롯이 마주했을 때. 그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은 직접 본 이들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감정일 것이다.
최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기증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마주한 국보 216호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역시 그랬다.
어두운 공간에 홀로 빛나고 있는 인왕제색도는 생각보다 작지 않은 크기(가로 138.2cm·세로 79.2cm)였다. 한여름 소나기가 내린 뒤 물을 잔뜩 머금은 인왕산의 모습을 몽환적이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려낸 정선의 필치에 감탄했다. 물에 젖은 바위나 구름에 싸인 산의 표현은 그림을 들여다볼 수록 그가 왜 조선의 대표 화가로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했다.
이 전시에는 3개월간 22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다. 주변의 누군가는 이 전시를 계기로 대구박물관에 처음 가봤다고도 했다. 막상 한번 가보니 어린이들을 위한 우리문화체험실이나 디지털아트존 등이 잘 갖춰져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찾게 되더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박물관 소풍'도 우리를 자연스럽게 박물관으로 이끄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아무 때나 가볍게'. 박물관 소풍이 취미이자 특기인 지은이가 전국의 국공립 박물관 10곳을 소개한다. 부제처럼 지은이가 말하는 국공립박물관의 매력은 문턱이 낮아 아무 때가 가볍게 찾을 수 있다는 것. 월요일 휴무와 추석, 설날, 신정을 제외하고 1년 내내 문을 여는 데다 일부 기획전을 제외하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전통회화 전공자이자 문화재 보존처리 전문가인 지은이의 역량은 박물관과 유물을 풍성하게 즐기게 하는 데에 크게 한몫한다.
책에서 그는 틈틈이 나무배와 같은 수침목재를 썩히지 않고 보존하는 법이나 산산조각 난 청자를 복원한 흔적 등을 짚어준다. 그로써 독자들은 역설적으로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들이 실은 오래 전 누군가의 손을 타던 물건이었음을, 불사의 존재이기 전에 쓸모를 다한 존재였음을 깨닫는다.
또한 재료와 형태가 비슷한 유물도 어느 박물관에 있느냐에 따라 낯빛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유물 안내문보다 유물을 더 유심히 보고, 감흥이 없는 유물 앞은 무심히 지나가도 좋다는 게 지은이가 적극 권하는 얘기다.
박물관에 빠져들었던 초반, 유물 하나하나에 시선을 두었던 저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박물관 자체로 관심을 확장한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마을 하나가 옹기종기 모인 듯한 지붕을 얹고 있다는 진주박물관의 건축이 궁금해지고, 광화문의 랜드마크를 바랐지만 '최악의 건물'이 되어버린 민속박물관도 직접 보고 싶어진다.
유익한 정보로만 똘똘 뭉친 비장함보다는, 가볍게 박물관이 사는 얘기를 이것저것 듣고 와 전해주는 듯한 소탈함이 책의 재미를 돋운다. 국립대구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도 포함돼있는데, 우리가 항상 근처를 지나치면서도 잘 몰랐던 박물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40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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