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학부모 갑질권을 손보자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한 소아청소년과 폐업 소식이 화제였다. 병원 안내문에선 "꽃 같은 아이들과 함께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은 행운이자 기쁨이었다"면서도 "하지만 A(4) 군 보호자의 악성 허위 민원으로 인해 오는 8월 5일 폐과를 알린다"고 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건 참 좋은데 보호자, 즉 부모들이 너무 버겁단 얘기였다.

이 의사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2019년 80%였던 게 2023년 16.6%로 크게 떨어졌다. 귀한 자식 진료 빨리 정성껏 해주지 않는다고 폭언·폭행에 맛집 별점 테러처럼 악성 온라인 글을 쓰고 민원을 넣는 사례가 '포비아'(공포증)를 만든단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추모객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 학교 담임 교사 A씨가 학교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추모객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 학교 담임 교사 A씨가 학교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 추모행사에서 추모객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 추모행사에서 추모객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서이초등학교에서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전국초등교사노조 조합원을 비롯한 초등학교 교사들이 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 열린 추모 기자회견에서 동료 교사의 추모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이초등학교에서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전국초등교사노조 조합원을 비롯한 초등학교 교사들이 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 열린 추모 기자회견에서 동료 교사의 추모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보호자를 학부모로 바꾼 닮은꼴 상황이 학교에 만연하다.

사실 '학부모 갑질'은 오래된 문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교권 침해 상담·처리 건수가 2020년 402건, 2021년 437건, 2022년 520건으로 점차 느는 가운데 학부모의 교권 침해가 급증했다. 2022년 교권 침해 주체로 학부모가 가장 많은 241건(46.4%)을 차지했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불만을 품고 아동학대로 신고한다고 협박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학생지도 관련 상담의 절반 이상은 이런 협박 또는 고소를 학부모로부터 실제 당한 사례였다. 교총 관계자는 "대부분 무혐의 종결될 만큼 무고성이다. 학부모들이 무고로 받을 피해가 거의 없는 걸 악용한다"고 분석했다.

아이들이 의사를 때리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병원과 달리, 학교에선 과거에 비해 덩치가 커진 학생들이 심심찮게 교사를 때리고, 그런 아이를 학부모가 감싸고 돌며 교사 멱살도 잡는 사례가 곧잘 뉴스로 전해진다.

이렇다 보니 교대 경쟁률도 하락세다. 입시 전문기관 유웨이가 밝힌 올해 전국 교대 정시 경쟁률은 1.87대 1로 지난해 2.2대 1에서 하락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원 수 감축이 드러난 원인이라지만, 전염병처럼 퍼지는 포비아의 특성을 감안하면 폐업을 앞둔 소아청소년과 안내문을 인용할 만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참 좋은데, 학부모들이 너무 버겁다.

최근 한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 선택을 한 것을 계기로 온라인에서는 교사,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학부모 포비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을 걷어내고 보면 자녀에 대한 '사랑'을 빙자해 '집착'하는 블랙 컨슈머(악성 소비자)들이 꽤 많다. 온갖 민원·협박·고소에 더해, 향후 자식 대학 강의실과 직장 회식 자리까지 따라가기 전 단계인 수학여행 쫓아가기 같은 행동들에다, "우리 애 특정 아이랑 떨어뜨려 주세요" "추위를 많이 타니 문가는 피해 앉혀 주세요" "잠이 많아 자주 지각을 하니 혼내지 마세요" 같은 얼핏 소소해 보이지만 현장에선 '미쳐 버리는' 요구들 등 현장에선 익숙한 사례들이 한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성토의 장에 오르고 있다.

'이게 학부모다'라는 제목의 온라인 글도 눈길을 끈다. 사망한 교사 추모 이미지를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더니 학부모가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자제하라"고 연락이 왔다는 것.

2010년 전후로 도입된 학생인권조례를 교사에게 적용한다면 허용키 힘든 '오지랖'이다.

교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교권 중에서도 교사의 최소한의 인권을 말이다.

국회는 지난해 교사의 학생 지도 권한을 강화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협박·고소 남발이 문제인 아동학대 면책권 부여 방안도 논의 중이다. 반대로 학생인권조례가 되레 교권을 추락시킨다는 주장엔 일부 지자체가 폐지도 추진 중이다.

교권을 강화한다고 학생 인권이 내려가는 건 아니다. 자세히 못 본 게 있다. 학생 인권을 높이며 그 뒤에 숨은 학부모 갑질권이 치솟은 점이다. 이번 기회에 손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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