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는 유방과 항우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틱한 역사 이야기다. 이 둘은 출신부터 성격까지 너무나 대조적이다. 결국 두 사람의 리더십 차이가 진나라 이후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유방의 리더십은 솔직하고 포용적이다. 또한 실리적이고 신하의 말을 경청한다. 반면 항우의 리더십은 부하에 대한 불신과 독선, 그리고 오만함과 포악함으로 인해 엄청난 야전 전투 능력에도 불구하고, 유방에게 패해 사랑하는 연인 우희와 함께 하늘을 원망하며 쓸쓸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세계 최대의 화학 직물 생산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대구경북 섬유산업의 생태계가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업스트림인 원사 기업들의 생산 중단과 코로나 이후 급격히 감소한 주문량으로 산지는 지금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구경북뿐만 아니라 부산경남, 경기 지역 섬유산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같이 산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촌각을 다투는 절체절명의 시기임에도 섬유 단체들의 최대 의사결정기구인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어떠한 정책이나 대안도 없이 이 난국을 수수방관하고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더군다나 연합회 차기 회장 추대를 앞두고 지역 간, 스트림 간 불협화음이 도를 넘고 있어 볼썽사납다.
연합회 회장 선출과 관련한 정관은 이사회에서 5인 이내의 추대의원을 구성하고, 추대의원이 추대한 1인이 총회 의결을 통해 취임하게 돼 있다. 문제는 5인 추대의원 구성에서부터 파열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5인 추대의원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현재의 회장과 전임 회장의 가까운 인사로 구성돼 있어 특정인을 밀기 위한 추대의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따라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독선적, 세습적, 돌려 막기식 그들만의 리그로 치러지는 선거의 들러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회장 선거의 의의는 올해 7월 제주도 CEO 포럼에서 제기된 스트림 간의 협력을 통한 위기 극복과 지역과 서울이 함께 상생하고, 정부와 협단체 간 소통을 통해 정부에 섬유 관련 정책들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연합회가 제 역할을 찾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대의에 따라 대구경북, 부산경남, 경기 지역 섬유업계는 차기 연합회 회장 선출을 위한 운영 방식이 부당하다며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집행부는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우며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이대로 연합회 회장 선출이 이루어진다면 연합회는 두 동강이 나고, 그 갈등의 골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그 속에서 탄생한 집행부는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며, 몇몇 인사들을 위한 연합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지당한 것이다. 지금의 연합회 운영은 해외에 거점을 둔 밴드와 국내 생산 현장 없이 해외에서 생산하고 본사만 국내에 둔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어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각설하고 섬유산업 최고 수장을 뽑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연합회는 대구경북뿐만 아니라 부산경남, 경기 지역을 대변해서 활동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차기 연합회 회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최고 수장의 리더십은 특정한 분야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서도 안 되고, 배제와 갈라치기를 통해 몇몇 전현직 회장단들의 이해관계만 대변해서도 안 된다.
불신과 독선과 오만함으로 실패한 항우의 리더십이 아니라, 관용과 포용의 리더십, 여러 재상들의 의견을 경청하던 유방의 리더십이 간절히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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