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의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부에 있었다. 국가 간에도 생활의 반경이 서로 겹치면 관계를 단절하기가 어렵다. 2023년 7월 18일 미국반도체협회(SIA)가 묘한 결의를 했다. 미국이 대통령부터 나서서 첨단산업의 대중국 봉쇄를 부르짖고 동맹국들에게도 대중국 투자 금지와 공급망 탈퇴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미중 기술 전쟁의 당사자인 반도체 회사의 CEO들이 나서서 더 이상의 대중국 제재를 하면 안 된다는 건의를 했다. 누가 미국의 적이고 아군인지 모른다. 반도체 보조금 지원의 필수 조건으로 중국 공장 증설 제한을 당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2005년 1월 1일 미국 경제지 프리랜서 기자인 '사라 본지오르니'의 가족은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 보기' 실험을 했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실험을 중단했다. 이미 2005년에 중국산으로부터 탈출하는, 소위 '차이나 프리'(China Free)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본지오르니는 실험에는 실패했지만 2007년에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 보기'(A Year Without Made in China)를 출간하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미국 정부는 입으로는 탈중국, 대중 단절, 대중 봉쇄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최근 3년간 대중국 무역 거래액이 사상 최고치이고 대중 무역적자도 사상 최대였다. 이유는 '월마트 효과' '애플 효과' 때문이다. 월마트에서 파는 물건의 46%가 메이드 인 차이나이고, 애플은 스마트폰과 여타 제품의 80% 이상을 중국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말이 바뀌는 것도 문제다.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은 '중국 제조 2025'의 정부 보조금을 문제 삼아 보조금은 자유시장경제를 저해하는 독이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 들어서는 반도체산업에 527억 달러의 보조금을 당당하게 지원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데이터를 보면 미국이 '탈(脫)중국' 한 게 아니라 정작 중국이 '탈(脫)미국' 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중국의 무역흑자는 사상 최대치를 계속 경신했지만 중국의 대미 무역 의존도는 계속 낮아지고 있고,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중국은 한때 1조 3천만 달러까지 갔던 미국채 보유를 8천억 달러대로 낮추고 있고 2023년 들어서도 계속 미국채를 매도하고 있다
돈에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 국제관계에서는 돈이 되면 동맹이고 돈이 안 되면 동맹도 버린다. 미국 대통령과 정부가 중국에 가지 말고 공장을 빼면 보조금을 준다는데 세계 1위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중국에 계속 증설하고, 미국 1위 스마트폰 회사 애플은 중국에서 공장 철수를 하지 않고 있다.
답은 시장(市場)에 있다. 미국이 전기차를 99만 대 사는데 중국은 680만 대를 산다. 중국은 핸드폰 가입자가 17억 5천만 명으로 미국의 4배다. 공장은 보조금을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고 시장 가까이 짓는 것이다. 이미 우리도 일본과 소부장 사태에서 경험했지만 기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 기술이 갑(甲)이 아니라 시장이 갑이다.
돈 앞에서는 적을 미워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한중 간의 무역적자가 날로 커지고 한중 간의 관계가 최악이라고 한다. 한중 관계는 철저한 이해관계다. 중국은 한국의 이념의 동지, 사상의 친구였던 적이 없다. 협력은 돈 되는 것에만 국한된다. 필요한 것을 팔고 돈 받으면 끝나는 거래다.
그러나 삶의 영역이 겹치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한중 관계도 마찬가지로 미중 관계처럼 삶의 영역이 이미 너무 많이 겹친다. 한국이 중국의 무례에 분노하지만 극중(克中)하고 싶다면 지중(知中)이 먼저다.
제대로 된 중국통을 키우고 활용하지 않으면 중국 사업은 접는 것이 맞다. 미국의 100살에 100번 방중한 키신저 같은 중국통이 한국에는 없다. 한국은 한·중 수교 30년간 마늘 분쟁, 어업 분쟁, 김치 분쟁, 사드 문제, 요소수 사태 등 수많은 문제에서 한 번도 속 시원하게 사과받은 적도 없고 중국의 최고지도자와 직접 통화하고 협상할 수 있는 중국통이 없었다.
한국은 중국의 국가 지도자가 언제든 만나주는 진짜 거물 중국통을 키워야 한다. 중국어도 안 되고 중국에서 공부한 적도, 살아본 적도, 일해본 적도 없는 중국 전문가의 훈수는 백날 들어 봤자 의미 없다. 중국어 안 되는 외교관, 주재원으로 중국과 협상에서 이길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조두진의 인사이드 정치] 열 일 하는 한동훈 대표에게 큰 상(賞)을 주자
한동훈, 당대표 취임 100일 "尹 정부 성공, 누구보다 바란다"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