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나뭇잎 사이로 새하얀 햇빛이 잘게 부서져 내렸다. 둘째 아이 허리 높이까지 차오른 흙탕물에 닭과 개가 둥둥 떠다니고, 다리가 끊기고, 급류에 휩쓸려 사람이 죽는 일 같은 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화창한 날씨였다. 이러다가 또 언제 어떻게 돌변해 사람들의 소중한 걸 빼앗아 갈지, 조선영(가명·35) 씨는 무정한 자연이 미웠다.
'차만이라도 멀쩡했으면 좋을텐데….'
저 멀리 대구의 수리소에 맡긴 차는 아직 소식이 없었다. 정비소 아저씨가 보닛을 열어 진흙으로 엉망진창이 된 내부를 확인했을 때 지은 표정을 떠올려 보면, 앞으로 수일은 더 걸릴 것 같았다. 시골에서 차가 없다는 건 고립을 의미한다. 당장 셋째 병원은 어떻게 다닐지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진 찰나, 숙소 바닥에 엎어져 문제집을 풀고 있는 첫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부를 꽤 잘하는 첫째가 언젠가 의사가 돼 마을에 병원을 세우고 싶다 했던 게 생각났다. 병원은커녕 약국 하나 없는 이 마을에서, 동생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수줍게 말하곤 했다. 선영 씨는 말없이 다가가 그 소중한 작은 등을 쓰다듬었다.
◆도시 생활하다 농촌 내려와… 몸 약한 셋째 태어난 이후 병원비로 '휘청'
선영 씨와 오한규(가명·38) 씨는 같은 대학 밴드동아리에서 만나 6개월 연애 끝에 결혼했다. 스물, 스물 셋. 이른 나이에 한 결혼이었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만큼 부부는 최선을 다했다. 선영 씨는 어린 수성이를 안은 채 학교에 다녔고, 남편은 통신사 콜센터에 취직해 돈을 벌었다.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콜센터 5년차가 됐을 때, 남편의 몸무게는 10kg이나 빠졌다. 매일 밤 상냥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잠꼬대도 했다. 남편의 정신은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을 때가 온 것이었다. 궁리 끝에 나온 결과는 '시골에서 농사짓기'였다. 도시 생활에 지치기도 했던 부부는 설레는 마음으로 첫째 수성이와 두 살배기 둘째 지성(가명·12)이를 데리고 경북 문경으로 내려왔다. 그동안 모은 돈에 신혼부부 전세 대출을 받아 전세금 8천만원으로 집을 구했다. 빚을 내 미래에 오미자를 심을 작은 밭도 마련했다. 남편은 농자재 마트에서 컴퓨터 다루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다른 농가 일을 거들며 농사도 배웠다. 넉넉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살만했다.
그러다 셋째 금성(가명·5)이가 태어나며 형편이 기울기 시작했다. 금성이는 27주 만에 800g에 불과한 조산아로 태어났다. 건강이 안 좋은 금성이는 동맥관 개존증으로 생후 2주 때 수술을 받았다. 이후 3kg까지 몸이 불었을 때 탈장 수술을, 10개월이 됐을 땐 요도하혈 수술을 차례차례 진행했다. 이외에도 작은 몸 구석구석에서 여러 문제가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금성이는 인큐베이터에 있을 무렵 발견된 뇌출혈로 신경과와 재활의학과 치료를, 시신경이 덜 자란 채로 태어나 안과 치료를 받고 있다. 치아 신경이 잇몸 밖으로 나와 있고 청력에도 이상이 발견돼 치과와 이비인후과도 다니고 있다. 대구에 있는 병원을 오가느라 금성이를 데리고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는 새, 선영 씨의 하루는 순식간에 저물었다.
◆7천만원 빚 안 그래도 버거운데… 폭우로 밭·집·차 다 망가져
병원비로만 거의 8천만원을 썼다. 수술 때문에 병원에서 지냈던 탓이 컸다. 다인실을 써도 입원비가 한 달에 200만원씩 나왔다. 재활 치료에도 매달 100만원이 들었다. 은행 대출은 불가피했다. 이전에 있던 빚까지 더해 1억원이라는 빚이 눈 깜짝할 새 생겼다. 무릎 꿇게 만드는 금액이었으나, 세 아들을 위해 일어서야 했다. 선영 씨는 세 아이 육아에 펜션 청소 일까지 병행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부부는 피땀 흘려 매달 원금 일부와 이자 60만원을 내며 부랴부랴 빚을 갚아왔다. 부채는 7천만원으로 줄었다. 10년간 농사도 배웠겠다, 올해부터는 밭에 고추를 심기로 했다. 고춧가루로 가공해 팔 요량이었다. 지인 몇 명에게 판매 예약도 받아냈다.
작은 희망은 지난 14일 폭우와 함께 부서져 내렸다. 오후 5시쯤 선영 씨는 중학교, 초등학교, 어린이집을 차례로 들려 세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탈길에서 급류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물살을 타고 돌과 함께 냉장고가 데굴데굴 굴러 내려왔다. 비어 있던 이웃집이 물살에 터져버렸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호우 피해인 줄만 알고 우선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선영 씨네 집은 아무 피해가 없었다. 그날 밤 다섯 식구는 여느 때처럼 옹기종기 모여 주말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 와중에 정전이 돼서 하는 수 없이 일찍 잠을 청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새벽 서너 시쯤 꽝!!!하는 굉음이 들려 밖으로 뛰쳐나오니 밭이고 관개시설이고 모든 게 토사로 뒤덮여 있었다. 창고도 무너져 그 안에 있던 농기계들도 다 망가지고 말았다. 스마트폰도 안 되고, 차를 타고 대피하려니 차를 세워둔 마을 입구로 가는 길도 하나는 토사로 뒤덮이고, 다른 길은 실개천에서 물이 불어나 형성된 계곡으로 막혀 있었다. 다섯 식구는 다른 마을 사람들 두세 명과 인간 띠를 만들어 겨우 계곡을 건넜다. 이후 차를 타고 민간 복지센터로 내려왔다. 그러는 사이 차도 망가지고 말았다. 산사태로 집으로 가는 다리가 유실됐고, 집 자체도 일부가 붕괴해 그날부터 지금까지 다섯 식구는 복지센터 내 마련된 숙박시설에서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센터 측의 배려였지만, 언제까지 무료로 이곳에 머물 순 없었다.
선영 씨는 망가진 마을 곳곳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망가진 밭과 집, 그리고 차를 떠올렸다. 갚아야 할 빚도 한참 남았는데 집 복구, 차 수리에 비용이 얼마가 나올지 걱정이었다. 차 없이 셋째 병원을 오가는 일도 상당히 골치였다. 무정한 자연보다 더 무서운 현실 생각에 선영 씨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069-05-024143-008 / 우체국 700039-02-532604
예금주 : (주)매일신문사(이웃사랑)
▶DGB대구은행 IM샵 바로가기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지난주 성금내역]
◆아버지 일찍 여의고 13살때부터 섬유공장서 고강도 노동 시달리다 능력 인정받고 회사 차렸으나 부도나서 빚 독촉 시달리며 독거 중인 김흥춘 씨에게 1,961만원 전달
13살 때부터 섬유공장에서 고된 일에 시달리다 능력을 인정받고 회사까지 차렸으나 부도와 이혼 후 단칸방에서 홀로 살고 있는 김흥춘(매일신문 7월 11일자 10면) 씨에게 1천961만1천219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성현탁 20만원 ▷조재홍 5만원 ▷방순옥 4만원 ▷여환주 4만원 ▷권규돈 3만원 ▷이서연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김진만 1만원 ▷이아영 1만원 ▷한정화 1만원 ▷허영재 1만원 ▷김주현 5천원 ▷이장윤 2천원 ▷어려운시기보태 600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회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다 하나뿐인 아들 화상 입었는데 재활 수술비 마련할 돈 없어 막막한 강예은 씨에게 2,970만원 성금
교회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다 하나뿐인 아들이 화상을 입은 이후 재활 수술비 마련이 막막한 강예은(매일신문 7월 18일자 10면) 씨에게 53개 단체, 252명의 독자가 2천970만4천277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웨스코학원 아나바다성금 79만7천100원 ▷빛명상본부 6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세무법인 송정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박기태)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농업회사법인 (주)클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홍천뚝배기(서금희)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극동특수중량(김형중) 5만원 ▷느티나무한약국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피플라이프(박태호)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이정추 각 100만원 ▷김진숙 50만원 ▷이신덕 이영미 이영석 최숙희 각 30만원 ▷고세경 박철기 백미화 성현탁 이성혜 최민준 허금주 각 20만원 ▷고은주 곽영숙 곽용 김순향 김영순 김이영 남영희 안형주 이은하 이정이 이희숙 장경숙 장명애 장정순 전시형 정미숙 조득환 최성인 허선희 각 10만원 ▷김문정 8만원 ▷안정원 이차희 각 7만원 ▷구율원 김경호 김영수 김은경 김혜진 김호근 박정희 백성호 변대석 서정오 서준교 신광련 안대용 오경석 오상필 윤성호 윤하나 이경옥 이경자 이권수 이명호 이보람 이선미 이종하 이창영 이해진 임수연 임종보 임지은 임채숙 전우식 정원수 정휘태 조유준 조진우 진국성 차경숙 최상수 최춘희 최한태 하혜련 각 5만원 ▷서석호 이상준 각 4만원 ▷윤선희 3만627원 ▷강종수 김덕우 김보미 김유미 김태욱 김현주 박서령 박선영 박승호 박인혜 배현주 서현조 성효민 신경희 오정혜 은남매 이대성 이민경 이상숙 이서연 이석우 이소영 이승민 이혜승 조수민 조은정 채미선 최지혜 하경석 한명환 각 3만원 ▷강예은 권두형 김석범 김옥진 김춘구 나은숙 류휘열 박기영 박영재 박임상 박희숙 엄명두 유정자 윤덕준 이시은 이재민 이재열 이해수 임윤성 장현정 정주현 주경윤 진승민 천정창 허순옥 각 2만원 ▷권령경 권오영 권유진 김경숙 김다영 김삼수 김상식 김성옥 김성진 김은영 김은희 김인경 김지희 김태옥 김태천 박상옥 박세은 박인배 박재석 박지은 박찬희 박태용 박현주 박홍선 배송희 서명진 송옥선 우동수 우철규 우혜윤 유귀녀 유명희 유영미 윤미희 윤소담 윤인주 이동수 이병순 이영수 이용재 이원형이지영 이태화 이현숙 정서원 정충기 조영식 지호열 최경철 최미향 최병철 한명숙 홍서연 각 1만원 ▷권희성 이재업 이진기 각 5천원 ▷염사엽 최성민 각 3천원▷이현주 최연준 각 1천원
▷'우진아힘내' '이경아-우진' 각 30만원 ▷'대덕임애경' 20만원 ▷'관세음보살' '김규빈(이웃주님' '김나현쌤' '사랑나눔624' '선재' '아가야 잘 치료' '이웃사랑' '주님사랑' 각 10만원 ▷'강태욱우진이도' '김경숙기도합니다.' '김미연 우진치료' '김민규안다겸' '김영숙우진화상수술' '꼭전달바랍니다' '류현수.미리.지연' '불자정순화' '빠른쾌유빌어요' '우진아힘내' '우진이 사랑해' '우진이네손경호' '주님사랑' '케이이엘리사' '함께 기도 하겠습니' '희망금' 각 5만원 ▷'수민수진' '우진아힘내' '우진이/여호와라파' '우진이가행복하' '이영곤우진이돕' '힘내세요' 각 3만원 ▷'명수슬기준서' '샬롬' '석희석주' '예수님사랑' '우진이' '주님사랑' '희망을가지고힘내세요' 각 2만원 ▷'교회화상지원' '김경희서율' '꼭 완치 될거에요' '예수!우진힘내' '우진아힘내' '윤민호 우진아힘내' '적어서미안해요' '조희수힘내세요' '주님이함께하십니다' '지현이동환이' 각 1만원 ▷'건강해' 5천원 ▷'김명숙도움' 3천원 ▷'디인 힘내세요' '지성이' '채영이' 각 2천원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로 재표결 시 이탈표 더 늘 것" 박주민이 내다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