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재난 기시감'…이번엔 남겨진 이들 아픔 온전히 달래길

홍준헌 기자
홍준헌 기자

2014년 4월, 대형 여객선 승객 476명 중 304명이 바다 한가운데서 숨지거나 실종됐다. 피어보지 못한 고등학생도 250명이나 있었다. 수일간 생중계된 침몰 장면이 '재난 트라우마'를 심었고, 온 국민이 사태의 원인과 재발 방지책에 관심을 쏟았다.

선장의 발 빠른 탈출, 선주사의 선박 불법 개조, 현장에 출동하고도 발만 동동 구른 해경, 사태 파악도 전에 '전원 구조'를 발표한 정부와 이를 그대로 받아쓴 언론, 재난 대응 매뉴얼 부재, 대통령의 수 시간 지휘 공백 등 온갖 문제가 지적됐다.

재난 대응 체계에 대한 비판은 정부 관계 부처, 나아가 대통령을 향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가운데 야당이 가세하며 정쟁으로 번졌다.

실종자를 수색하던 민간 잠수사가 잠수병으로 숨진 날, 유족의 이름표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었다.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유족에게 여당과 언론, 시민 단체, 누리꾼은 "지겹다, 이제 그만하라"며 혐오를 내뱉었다.

거센 다툼 속에서 "이번 계기로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대통령 담화는 국민들 기억 저편으로 잊혔다.

기자가 된 첫해의 일이다. 재난의 슬픔과 두려움, 나아가 사람에 대한 무서움마저 느낀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 9년째인 올해, '극한호우'가 국내 5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경북 예천과 문경, 영주, 봉화에서는 산이 쏟아져내려 27명이 숨지고 실종됐다. 순간의 부주의로 실종된 대구경북 지역민,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원을 더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기시감이 든다.

행정은 자연 재난에도 대비할 의무가 있다. 인재가 가세했다면 더욱 큰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미숙했다" 사과 한마디 없다. 사람들은 피해 주민이 아파할 말을 서슴지 않는다. 유족은 피해가 컸던 원인을 소리 높여 묻지도 못한다.

충북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는 정쟁으로 번졌다. "사상자가 한두 명인 줄 알았다. 내가 현장에 갔어도 바뀔 것 없다"던 여당 소속 광역단체장 발언이 도화선이다. 야당은 그것이 "(외국 출장 중인 대통령이) 서울로 가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한 대통령실 태도와 같다며 정부 여당을 비판한다.

도심에서 젊은이가 대거 숨진 오송에 비하면, 농촌에 노인 피해자가 다수인 경북 재해는 큰 관심과 동정조차 못 받았다. 정계 고위 인사들의 사후약방문도 복구 속도만 늦췄다. 이런 와중 예천 실종자를 찾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순직하자 몇몇 누리꾼은 "죽은 사람 찾자고 산 사람 죽이느냐"고 쏘아붙였다.

정작 가장 고통스러울 피해 주민들은 몸부림을 이어가고 있다. 안타깝고 절절한 사연, 스스로 추측한 사고 이유를 외부에 알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 달라"고 외친다.

주민들의 심정은 상상조차 어렵다. 다만 혼자만 살아남은 죄책감을 '우리 잘못이 아니다' 납득하고, 떠난 이를 달래며, 남은 삶을 안전히 지속하려는 바람이리라 추측해 본다.

경북 예천을 돌아본 윤석열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백지화하고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 방안 마련에 전념하기로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기상이변에 따른 재해 관리 방식을 중앙·지방정부가 재검토할 때"라고 했다.

부디 이번 재난은 갈등의 씨앗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확한 진단과 대책으로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온전히 달래 줬으면, '더 안전한 대한민국, 경상북도'를 안겨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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