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가붕개'의 어느 여름 나기

송신용 서울지사장
송신용 서울지사장

개천의 가재·붕어·개구리에게 이 여름은 숨 막힌다. 날씨도 날씨지만 유례없는 폭우로 피해가 줄줄이다. 지하도 침수로 14명이 숨지는가 하면 산사태로 급류에 휩쓸린 2명은 열흘 넘게 수습 못하는 지경이다. 경북 예천에서는 맨몸으로 구조작업에 동원된 해병대 병사가 꽃다운 목숨을 바쳤다. 사망·실종자가 50명이다. 호우로 대피한 사람은 2만 명에 육박한다. 농작물을 감안하면 피해가 천문학 규모다. 뒷북 수습조차 엉망이니 가붕개의 고단함이 오죽할까.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건과 관련해서는 국무조정실이 그제 충북도 본청 관계자 등 12명을 검찰에 추가 수사 의뢰했다. 국조실과 경찰이 현장에 안 갔네, 갔네 티격태격이니 진실이 깜깜하다. 각자도생(各自圖生)·자력갱생(自力更生) 못한 희생자만 억울하게 됐다. 이태원 압사 참사 9개월째건만 오늘날 대한민국 풍경은 여전하다. 공교롭게도 헌법재판소는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이태원 참사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용(龍)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한국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재해)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방문 취소를 검토했느냐"는 출입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다. 오송 사고를 진두지휘해야 할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내가) 거기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언급, 설화(舌禍)를 키웠다. '윗물, 아랫물'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무공감·불통이다.

야권(野圈)이라고 무어가 다른가. 국회의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6선 박병석 의원과 박정 환경노동위원장은 지난 23일 베트남으로 출국을 강행했다. 이날 기상청은 서해안 일부에 호우경보를, 수도권과 영서 북부에 호우주의보를 발령했다. 지역에 따라 누적 강수량이 200mm 가까웠던 때다. 환노위는 수해방지법안들을 26일 심사해 28일 법사위로 넘길 예정이었는데 비판 여론이 들끓자 조기에 돌아왔다. 대통령과 여당 비난에 핏대를 세우더니 정작 자신은 수해(水害)에 손을 놓은 내로남불이다.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한 마을에서 차량 등이 파선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한 마을에서 차량 등이 파선돼 있다. 연합뉴스

가붕개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 '판도라 상자'에서처럼 쏟아져 나오는 계절이다. 한 새내기 교사가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학부모 갑(甲)질이 한 배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교직사회에서 '교권 수호'를 외치는 반면 그 이면에서는 '사교육 카르텔'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지난 10년간 학원으로부터 1억 원 넘게 받은 교사가 60명이 넘는단다. 거액의 코인 거래로 논란을 빚은 김남국 의원이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제명 권고에 오불관언(吾不關焉) 하는 것도 전형적인 용의 행태다.

'50억 클럽'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딸을 소환 조사한 건 압권이다. 박 전 특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경제 공동체' 법리로 엮은 인물이다. 그에 대해 검찰이 '딸과 경제적 공동체 관계에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으니 블랙 코미디다. 따지고 보면 용에 관심 가질 시간이 아니다. 5호 태풍 '독수리'가 올라오고 있어 개천에 비상이 걸렸다. 가붕개 따위의 안전·재산을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이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독수리가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기를 빌면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러니까 가붕개들아 잊지마라 "각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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