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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예고됐던 ‘교실 붕괴’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기자 시절, 교육 분야를 두 차례 담당했다. 1990년대 말, 그리고 10년 뒤였다. 90년대 말에는 체벌, 학생 인권 침해, 촌지가 이슈였다. 체벌 관련 제보를 받아 취재를 하면, 학교의 대응은 판박이다. 일단 '그런 일 없다'고 잡아뗀다. 꼬리가 밟히면 '사랑의 매'라고 둘러댄다. 사실 확인도 쉽지 않았다. 학교는 피해 학생이나 가해 교사를 숨겼다. 교육 당국은 경찰의 개입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느 교장은 학교에 경찰 순찰차가 들어오자, 버럭했다. '백차'가 왜 학교에 오냐고. 학교가 '불가침 영역'이라도 되는 듯.

교육 현장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교육 개혁 바람이 거셌다. 촌지와 체벌이 금지됐다. 학부모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초교 교장의 말이 기억난다. "별난 학부모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아파트에서 망원경으로 교실을 감시하기도 한다"고 했다. 과장된 넋두리로 여겼다. 극소수 학부모의 치맛바람이려니. 얼마 뒤 그런 사례들이 뉴스로 등장했다.

그즈음 '학교 현장 8판'이란 말이 유행했다. '학교는 무너질 판, 교장은 죽을 판, 교감은 살얼음판, 장학사는 닦달 판, 교사는 이판사판, 교실은 난장판, 학생은 개판, 학부모는 살 판.' 신랄한 풍자였다. '교실 붕괴'란 일본발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그때.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교실(학급) 붕괴'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교사의 말을 따르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교실은 엉망진창이었다. 또 투서와 고발로 교사를 괴롭히는 '몬스터 페어런츠'(괴물 학부모)가 극성을 부렸다.

교사들이 교권 침해로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초교 교사의 극단 선택에 따른 사망, 초교생의 교사 폭행이 발화점이다. 교권 침해는 적폐(積弊)이다. 20년 전 '학교 현장 8판'을 방치한 결과이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 개정 방침을 밝혔다. 학생 인권을 과하게 보장한 결과, 교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논리다. 설득력이 부족하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 중인 시·도는 17곳 중 6곳뿐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을 대립 구도로 모는 건 비교육적이다. 교권 보호는 학부모 갑질과, 교사의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누명 씌우는 일을 막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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