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의 물질은 해수면의 고단한 노동 행위이자 삶의 방식이며 삶의 전부다. 해녀의 물질로 채취한 자연 해산물들은 자식과 집을 지켜내는 삶의 물질이다. 인간적 욕망은 해수면으로 떠내려 보내고 살아가야 하는 고단한 해녀의 운명이 물질로 압축된다. 물옷(고무옷, 잠수복)과 물질 도구(테왁망사리, 빗창, 호맹이, 족쉐눈(물안경)로 몸을 감싼 해녀의 바다 물질은 수압의 압력으로 해녀의 몸을 직립보행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잠수병에 시달리게 한다. 바다는 너덜너덜해진 육신을 담궈 삶을 채취하는 해녀의 삶이다.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이진엽 연출이 제주 해녀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연출한 <물질>(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의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 이진엽 연출의 '물질'의 방식, 차,차,차 차원이 다른 '이머시브'
이진엽은 <물질>(2016)로 해녀의 치열한 물질에 투영되는 생존의 비극성을 담아낸다. <물질>이 온전한 공연 형식으로 초연된 것은 안산에 거주하는 난민의 삶을 수조(水槽)에 담아낸 <물질2 물질하다>(2018) 공연에서이다. 수조를 활용한 이 공연은 '안산국제거리극축제'와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난민들의 고독한 생존의 방식과 사회적인 고립성을 드러내며 난민들의 사회적인 문제를 강렬하게 인식시켰다. 스페인 공연(2022)에서는 퀴어 문제를 수조 안으로 담아냈다. 4개의 수조를 활용하는 구조와 형식은 동일하되, 투영되는 인간과 현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온 셈이다. 그런 만큼 이진엽의 '장소특정적 이머시브'는 공동체와 커뮤니티를 강조하고, 관객들은 단순한 체험이 아닌, '나'와 '우리' 문제로 인식하고 감각하는 방식으로 참여하게 된다. 수조를 통해 체험자의 이야기로 전환되고 공동체의 문제로 인지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방식을 이진엽은 코끼리들이 웃는다를 창단한 2009년부터 고집해왔다. 까마귀들이 퀴어와 난민 네 명의 영혼을 차원의 틈으로 부르면서 시작되는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배해율 작, 이진엽 연출, 2023)은 삶 속 죽음의 애도에 시공간적으로 관객을 참여시켜 사회적 비극과 죽음에 대해 감각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100세부터 63세 노인들의 내밀한 성(性) 문제를 과감히 날 것 그대로 꺼내든 <잠자리 연대기>(2022)에서는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까지를 통시적 연대기로 관통하며 결혼과 섹스라는 노골적이고 본능적인 잠자리 서사를 통해 제도와 삶으로부터 억압되어온 몸의 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이 밖에도 이진엽 연출은 청계천 철공소 지역 입정동의 재건축 문제를 다룬 <바람바람>(2019),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세 시에서 세 시, 네 시에서 네 시>(2019), <커뮤니티 대소동>(2022), <몸의 윤리>(2015)를 비롯, 장소이동형 공연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커뮤니티 장소를 체험하는 <안녕 광명>(2019), <독산 여러분>(2021) 등을 공연했다.
이동 중 만나게 되는 특정 공간, 건물, 장소, 빈집과 그 공간에서 현존하는 인물들을 직접 마주하는 체험은 커뮤니티 공동체 시간을 만나는 실천이 된다. 이는 이진엽 연출만의 장소특정적 이머시브 형식의 특징이다. 골목처럼 친근한 장소에 내재되어 있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환기되고 실천적인 행위로 구현되는 것이다. 관객 참여형 이머시브 공연의 주도적 작업 방식은 단순히 공연 성격을 인지하고 체험하는 형식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다. 참여자와 특정 장소가 단순한 공연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주체성을 확보할 때 이머시브의 현장은 공동체 이야기로 전환된다.
◆비극의 애도, 인간과 본능의 욕망이 소외된 몸
이진엽 연출은 이번 <물질> 공연을 통해 사회와 노동으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된 노동자, 성소수자, 임신한 워킹맘, 성형중독 여성을 다루었다. 물질을 해야 살 수 있는 해녀의 바다처럼, 가로 70센티, 세로 2미터 정도로 겨우 숨을 내뱉고 살 수 있는 4개 수조(水槽)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 이 수조는 숨 막히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형상화한 것이다. 무대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의 해수면처럼 느껴진다. 대형수조는 앞뒤 객석을 두고 중앙에 위치해 있다. 수조의 물결은 아크릴유리로 반사되어 그 폭은 공간 전체 자연의 물속을 바라보는 이미지로 확장된다. 무대 전체가 바다처럼, 육지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생존의 물질을 관객들이 바라보는 무대구조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투의 광경을 보고 있듯이 말이다. 입장부터 관객은 밀폐된 대형수조에 갇힌 4명의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전자제품 서비스센터 직원일 것 같은 한 남자는 회사 유니폼 복장을 하고 가방을 한 손으로 쥔 채 어디론가 달려가는 움직임으로 멈쳐있다. 그 옆 수조에서 한 남자는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듯 검정 스타킹이 드러나는 원피스와 빨간 구두를 신고 있다. 두 눈을 습관처럼 깜박거리며 불안한 움직임이 반복되고 있는 트렌스젠더이다. 이어 임신한 몸으로 장바구니와 사과를 들고 있는 여성, 몸 안으로 보형물을 채워 넣은 여성이 보인다. 각자 일상적인 삶이 순간 멈춘 동적인 형태로 서 있다. 무대는 세상 밖을 응시하는 고독하고 절망적인 그들의 시선과 이들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교차한다. 몸의 본능적인 욕망을 거세당한 그들의 시선은 인형처럼 공허하다.
이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으로부터 소외된 몸을 통해 그들의 척박한 삶을 드러낸다. 마치 사회구조와 자본, 타자의 욕망과 시선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그들이 몸담은 수조의 삶과 생존을 위한 물질은 고립과 외로움의 연속이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겨우 숨만 쉴 수 있는 세상처럼 보인다. 회사원(한기장 분)은 삶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갖지 못한 무기력한 노동자다. "나는 언제나 반복적으로 비슷비슷합니다. 약속은 나를 움직이고 움직이고 내가 정하지 않은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갑니다. (중략) 나는 점점 무뎌집니다" 회사원의 내레이션은 영끌해도 아파트 한 채 살 수 없는 4포의 절망만이 공존하는 정글 같은 생존게임에서 노동의 물질 행위가 희망을 견인하지 못하는 삶과 그 원인이 되는 거대자본의 광폭한 힘을 자조적으로 전달한다. 회사 명찰을 달고, 걷고 뛰며 '물질'을 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고 시계처럼 반복될 뿐이다. 회사원의 수조에 가득 찬 종이비닐은 개인의 욕망을 담고 허기진 삶을 채울 수 없는 물질(物質)이지만, 수조의 기포(氣泡)만이 채워지는 현실이다.
성 소수자(트렌스젠더, 남긍호 분)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온전한 여성이 될 수 없는 절망을 담아낸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내게서 거둬지지 않는 시선들 앞에서 나는 내 몸을 실감합니다. (중략) 나는 내 몸 구석구석을 만질 수 있고 내 몸은 구체적이고 내 몸은 나의 것입니다." 수조에 갇힌 트렌스젠더는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그의 시선도 불안하다. 임산부(서현성 분)는 "나는 홀몸이 아닙니다. (중략) 여기저기서,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릅니다. (중략) 지금 내가 있는 물 속은 누구의 몸 속 입니까?"라고 묻는다. 고령화와 인구 절벽 시대에 사회는 출산을 장려하지만, 자신의 몸의 희생을 통한 아이의 잉태가 오롯이 혼자의 책임으로 남는 불안한 워킹맘의 내레이션이다. 성형중독에 걸린 젊은 여성(이애리 분)은 "피부의 톤과 주름의 정도와 매끄러움, 이목구비와 머릿결, 목의 각도와 어깨선, 걸음걸이..(중략) 모두가 나를 봐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읊조린다. 성형중독을 부추기는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의 심리가 투영된다. 이들은 모두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소외된 몸을 보여준다. 회사원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몸을, 성소수자 트레스젠더와 타인과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소외된 몸을, 임산부는 한 생명을 잉태한 엄마로서 희생을 강요받는 몸을, 성형중독여성은 자연스런 자신의 몸으로부터 소외된 몸을 보여준다.
소외된 몸들은 불안, 고독, 절망과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고, 관객은 이들 삶을 수조 안의 행위와 간헐적 내레이션을 통해 감각적으로 인지한다. 각 수조 안 4명의 인물들은 때로는 해녀처럼 수면 밖으로 나와 잠시 숨을 쉬고 다시 수조 안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이들의 삶은 장면이 겹쳐지는 듯 독립된 파편적인 이야기로 전달되는데, 이진엽 연출은 소외된 몸에 개인의 욕망을 투사하고, 공연 말미 억압되어 있던 이들의 본능적 욕망을 회복시킨다. 회사원의 가방에서는 비닐을 비롯해 생존을 위한 용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성형중독 여성은 부착된 보형물을 몸으로부터 꺼낸다. 다양한 색감의 공들로 채워진 임산부의 장바구니와 사과, 그리고 성소수자의 스타킹과 여성복도 벗겨져 수조 속을 유영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수조 안에서 온전한 자신의 몸으로 해방될 수 없다. 이들의 삶에 공감하고, 이들의 손을 잡는 것은 무대에 등장시킨 외국인노동자와 난민들이다. 무대로 등장한 외국인노동자와 난민들은 수조 속 절박한 삶과 시선을 마주하고 응시한다. 이들 삶과 소통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수조로 들어갈 수 있는 계단형 철제사다리를 통해 외국인노동자와 난민들은 수조 안으로 들어간다. 매우 충격적이고 감각의 세포를 깨우는 극적인 치유 장면이다. 수조 속에서 서로 다른 인종이 엉킨다. 손, 얼굴, 머리를 쓰다듬고 아픔을 교감하며 손상된 내면을 치유한다. 공연의 극적인 후반부는 차, 차, 차원이 다른 사회적 문제를 공동체적 커뮤니티로 묶는 이머시브 방식으로 전환된다. 수조 속 외국인노동자와 난민들은 그대로 서 있을 뿐이다. 무대는 이 장면의 감각을 깨지 않는다. 외국인노동자와 난민의 도움으로 수조로부터 빠져나온 4명의 공연자들은 침묵의 언어로 약속되지 않은 관객을 향해 수조로 들어 갈 수 있는 참여를 유도하고 놀랍게도 4명의 관객이 일어섰다. 여성과 남성 관객들은 관람 상태의 일상복장 그대로 수조 안으로 들어갔고, 이들은 수조에 갇힌 외국인노동자, 난민, 회사원, 트렌스젠더, 임신부, 성형중독 여성의 삶을 직접 체험한다. 직접적인 체험방식은 그들의 삶을 '나'와 '우리의 삶'으로 환치시켜 공동체의 문제를 감각하고 인식하게 만든다. 비로소 나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숭고한 전율이 흘렀고 체험한 관객들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수조 안의 그들을 위한 희생은 감동의 장면이 되었다. 모든 사회적 재난과 참사는 공동체의 문제이며, 그것은 커뮤니티의 공감과 시선으로 극복되어야 한다는 이진엽 연출의 메시지로 느껴졌다. 그것은 또한 사회적 비극을 애도하는 방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진엽 연출의 말하기는 실재하는 특정 장소의 현재성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큼 극적인 공연예술가로서의 실천 행위가 또 있을까.
◆ 이진엽 연출의 말하기 방식
이진엽 연출은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물질을 변주시키며 사회적 문제를 수조 안에 담아왔다. 그것은 수조 안에 갇혀 사회적 물질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사회공동체가 문제적으로 인식해야 해야 할 사회적 비극이다. 연출가 이진엽의 무대와 장소, 현장의 구성은 특별하다. 그가 선택한 특정 장소(공연 현장)는 실체를 목격하고 현상을 감각적으로 목격하는 실존하는 커뮤니티 장소로서 실재한다. 그런 만큼 이진엽 연출에게 극을 구조화한 공연텍스트는 최소한의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특정 장소의 현장성, 퍼포머의 실제 행위, 공간구조 등에 관객 참여를 유도해 공연을 완성한다. 2023년도 세종문화회관 컨템퍼러리 시즌으로 공연되고 있는 <싱크 넥스트 23>(Sync Next 23)의 <물질>도 이와 같은 작업방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연출가 이진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연출 미니인터뷰
- <물질>을 작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제주도 해녀의 인터뷰에서 죽기 위해 들어가 살아서 돌아온다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많은 사람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고 생각했고 그 비극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질은 그 비극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발전하게 됐다."
- 연출의 공연에서는 이머시브 관객참여형 형태가 두드러진다. 단순한 관객참여 이상으로 공연의 텍스트로 등장하는 것 같다.
"배우가 만들어 내는 허구를 넘어 관객들이 서로의 거울이 되어 현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을 만들려고 했다."
- 공연에 이주민 노동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수조 안 인간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동등한 삶과 시선으로 수조 안으로 들어간다. 등장시킨 이유는.
"물질 작업 전에 안산 경기도 미술관에서 상주단체로 활동했다. 난민, 다문화가족과 이주노동자들과 예술 활동을 하면서 그들을 알아가게 되었다. 물질을 만들었던 시기 젊은 사람들은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청년들은 해외 이민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얘기들이 뉴스로 들렸다. 한국 사회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청년들은 당시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다. 난민들은 희망으로 한국 땅에 온다. 난민 문제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 모두의 이야기로 연결에 말하고 싶었다. 이번 <싱크 넥스트23> 이후 창원, 고양, 광주에서 공연된다. 지역에서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공연에 참여하게 되고 지역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물질>이 지역에서 어떻게 관객들이 반응하게 될지 궁금하다."
- 마지막 장면이 숭고한 극적인 장면이다. 관객 4명이 수조로 들어가는 행위는 그들의 인물들과 동일한 인간으로서 희생하는 치유의 행위로서 보인다. 특별한 연출의 의도가 있나.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에서 배제된 삶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 난민 커뮤니티와 마주하기를 바랐다. 굳게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이 한순간(공연) 해방되어 서로를 여는 감각을 만들려고 했다. 관객이 수조에 입수하는 행위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관객이 되고 관객의 참여는 같은 시간에 함께한 모두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감각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
- 앞으로 어떤 방식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나.
"지금까지 극장 밖에서 작업을 해왔다, 커뮤니티 대소동(2021)을 하면서 극장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물질 공연처럼 하나의 공연이 극장 밖과 안에서 만들어질 때, 달라지는 요소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국가 지원금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단기간에 준비해서 공연을 올렸다. 긴 시간을 가지고 공연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줄을 서고 있는데, 어떤 작업이므로 발현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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