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중호우로 농경시설과 가축이 대거 침수·폐사한 데다, 연초부터 이어진 이상기후로 농산물 공급이 줄어 밥상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높아진 농식품 값이 추석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경북도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농산물 가격 주간 상승률은 전주 대비 수박이 53%, 사과가 19% 각각 뛰었다. 또 오이는 200%, 애호박 140%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래 보관하기 힘든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뛰고 있다.
청상추(상품)를 보면 4㎏당 도매가격이 평균 9만360원으로 4주 전(1만8천120원)보다 398.7% 급등했다. 돼지고기 목살(100g)·삼겹살(100g)의 유통업체 평균 판매가격도 2주 전보다 4.5%, 7.1% 올라 각각 3천704원, 3천853원으로 나타났고, 소고기 등심(1등급·100g)은 같은 기간 5.7% 뛰어 1만1천977원으로 올랐다.
이번 폭우 피해로 농식품 공급량이 줄 공산이 커, 가격 상승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매몰 등 피해를 신고한 국내 농지 면적은 이날 기준 3만5천㏊를 훌쩍 넘는다. 국내 농산물 주산지인 경북의 농지 피해도 3천800㏊ 이상이다.
87만2천800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그 대부분은 닭·오리 등 가금류(86만2천700여 마리)이며 돼지와 소도 각각 4천300여 마리, 400여 마리 폐사했다.
경북 가축 폐사량은 26일 오전 11시 기준 11만8천여 마리로 집계됐다. 소와 돼지, 닭, 양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지역 농심(農心)은 타들어 가고 있다.
봄에는 이상고온과 이상저온으로 온탕·냉탕을 오갔고, 곧이어 오뉴월 호우와 우박이 잇따른 데다 과수화상병도 유행했다. 이달 집중호우까지 오면서 피해는 더 커졌다.

경북 영주시 장수면 성곡리 일대에선 과수원 6곳 8만2천500㎡이 산비탈에서 유출된 토사에 파묻혀 운동장이 됐다. 나무가 쓰러지고 사과가 대거 떨어져 나뒹굴었다.
농민 남성진(43) 씨는 "농사를 시작한 지 5년이 돼 두 달 뒤 처음으로 수확할 예정이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꿈이 수포로 돌아갔다"며 "수도권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대출까지 받아가며 가족과 함께 사과농사에 뛰어들었는데 남은 것은 갚아야 할 빚뿐이다. 다시 일어설 기력조차 잃었다"고 했다.
청송사과는 이번 집중호우기에 폭우만 내리고 바람은 동반되지 않았던 덕에 낙과와 과수원 침수 피해가 소폭 발생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연초부터 이상고온에 일찍 개화했다가 곧장 기온이 내리자 냉해를 보면서 지난해보다 결실이 훨씬 적은 상황이다.
이로 인해 사과값이 잠시 오른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전반적으로 농산 물가가 오르며 소비심리가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시학(58·청송) 씨는 "소비 심리가 위축하면 디저트로 즐겨 먹는 과일류 수요부터 줄어든다. 곧 사과 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중간 유통업자들만 수급을 조절해 이득을 챙기고, 피땀 흘린 농민은 손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또 한 번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로 추가 피해가 잇따를 경우 농축수산물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애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지난 2020년 9월 긴 장마에 농산물 등 가격이 급등하면서 농축수산물 물가가 12.8% 올랐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 0.9%였던 가운데 농축수산물의 전체 물가 상승률 기여도가 1.04%포인트(p)나 됐다.
정부는 침수 농작물에 대한 재해복구비를 신속히 지급하는 한편, 손해평가 속도를 높여 농작물 재해보험금 지급도 조기에 시작할 방침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올해는 기상이변의 영향을 유독 크게 받아 농가 어려움이 크다. 재해 보상 대책과 병행해 농가 지원책을 마련하는 한편, 중앙정부 차원의 도움을 받아 농가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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