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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소박한 삶에 관한 글쓰기 사례 연구2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결국 형질이 없는 생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글과 말은 존재한다. 세상을 바꿀 만한 멋진 생각이라도 글과 말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 글과 말은 생각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도구인 셈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도구의 쓰임은 참으로 다르다. 수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보존'과 '전달'이라는 각각의 대표적 특성이 이 쓰임의 차이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녹음이나 녹화 같은 보존적 처리가 되지 않은 이상, 말은 내뱉으면 이미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아마 말이 주워 담을 수 있는 실체를 남긴다면 세상의 수많은 송사(訟事)는 아주 쉽게 해결될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글은 주워 담을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어떤 경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 말에 비해 표현 방식의 다양함은 떨어지는 반면 규칙이 대단히 엄격하다. 일단 글은 배워야 한다. 말처럼 성장하면서 터득할 수가 없다. 글자만 안다고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배우려면 생각보다 까다로운 '법(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 앞에서 겸손해진다. 물론 여러 가지 의미로….

세상을 살다보면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조직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쓴다. 공손하고, 겸손하고 소박한 가면…. 이런 관계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자신도 상대방도 그 가면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정할 수 없는 '독자'라는 상대를 만나야 하는 글 앞에서 가면은 더 두터워질 수밖에 없다.

보통의 경우, 인간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글 중 최초로 시도하는 것은 일기일 것이다. 물론 일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줄 장르적 반경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가면을 쓸 필요가 없지만 가끔 그 일기가 공개되는 순간도 있다. 일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실패와 분노, 사랑과 질투, 성공과 보람 같은 일상적 삶의 기록은 큰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문장의 수준이나 표현의 세련됨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일기의 가치를 폄훼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기가 가진 '글의 소박함' 때문이다. 내용이 소박한 것이 아니라 집필 방식 자체의 소박함이다.

감정이나 상황을 소박하게 만들면서 자신을 높여 보겠다는 포석은 글 속에서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이 사실에 기반한 에세이나 SNS에 기재하는 글은 더욱 그렇다. 허술한 작전으로 만들어진 엉성한 글은 도리어 독자의 비아냥거림만 살 뿐이다. 성실히 노력해서 큰 재산을 일구고 지금 수십억원에 달하는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는 사람을 욕할 이유는 없다. 또 그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삶 자체는 그대로 글로 옮겨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굳이 소박이라는 가면을 씌워서 나의 성공을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나는 이것을 이만큼 가졌다'라고 소박하게 써낼 자신이 없다면 혹은 그것을 올곧게 '못 쓸 이유'가 있다면 그런 글은 쓰지 않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글은 말보다 훨씬 오래 남고 또 어디서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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