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선생님은 왜 맞을까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교권이 무너지고 선생님들이 곤욕을 치르는 것이 한두 가지 요인 때문은 아닐 것이다. 부모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 선생님을 '노동자'로 만들어 버린 전교조, 부족할 것 없이 자라 자기만 아는 아이들, 성적 지상주의 등.

무엇보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우리 사회의 '과잉된 정의 의식'(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큰 몫을 했다고 본다. 학생은 어리니 무슨 짓을 해도 보살펴야 할 대상이며, 끝까지 기다리고, 배려하고, 들어 주어야 할 존재라는 '과잉 정의'가 오히려 정의를 파괴하고,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과잉 'PC주의' 사례는 많다. 신문 기사에서는 신체 장애에 관한 단어를 쓰지 못한다. 한 예로 '장애인'의 상대편은 '비장애인'로 표기해야지 '정상인'으로 표기하면 '차별 조장'으로 신문윤리위의 지적을 받는다.

아르바이트 직원이 "내일부터 안 나오겠다"는 것은 무방하지만, 점주가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하면 갑질이 되고,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통해 원직 복직·해고 기간 임금 청구 등을 할 수 있다. 부당 해고 구제 제도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점주가 아르바이트 직원을 마구 해고하는 건 비난과 구제의 대상인데, 한창 바쁠 때 아르바이트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는 것은 '폐해'로 보지 않는 분위기를 짚어 보자는 것이다. 그런 식이니 학생은 선생님에게 온갖 소리를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선생님은 학생 간 싸움을 말렸다가 곤욕을 치르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고소당한다.

스스로 '깨어 있는 시민' 이라는 의사(擬似) 정의감에 빠져 '소수자와 약자·가난한 자는 무조건 옳고, 다수와 강자·부자는 무조건 나쁘다'는 사람들도 많다. 시민들의 '정치적 올바름' 추구를 악용해 정당한 제재를 차별로, 불량한 태도를 개성으로, 무분별한 요구를 권리로, 터무니없는 불평불만을 정의로 포장하는 자들도 수두룩하다. 팔이 없으면 '팔이 없다'고 하면 되는데, '팔이 없으니 곧 비너스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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