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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좋은 물갈이, 나쁜 물갈이

이창환 정치부장
이창환 정치부장

공천 물갈이설이 대구경북(TK)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 보수정당(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이번에는 과거보다 훨씬 빨리 나타났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불을 댕겼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1월 페이스북을 통해 "눈치만 보는 재선 이상 TK 국회의원들 전원 물갈이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물갈이 필요성을 언급한 탓에 물갈이설이 아예 수면 위에 떠올랐고, 그럴수록 TK 국회의원들은 수세에 몰렸다. 의원들이 사석에서는 홍 시장에 대해 불만을 숨기지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 후환(?)이 두려웠다는 게 정설이다.

국회의원 물갈이설은 홍 시장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매일신문이 창간 77주년을 맞아 7월 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구의 경우 '국회의원 교체 찬성' 응답이 48.1%였다. '한 번 더 하는 것이 낫다'는 응답(28.3%)보다 19.8%포인트(p)나 높았다. 경북의 '교체 찬성' 응답은 48.5%였다. '한 번 더 하는 것이 낫다'는 응답(32.6%)보다 15.9%p 높았다.(여론조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TK 물갈이론이 일각의 주장이 아니라 밑바닥 민심이라는 게 여론조사 수치에서 드러났다.

이 같은 여론에다 정치권의 줄 세우기가 더해지면서 선거 때마다 TK는 50% 안팎으로 교체됐다. 내년 공천에서도 최소한 국회의원 절반이 바뀔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큰 폭으로 교체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물갈이의 결과다. 아무리 물갈이를 해도 달라지지 않거나 정치 역량이 더 무기력해진다면 물갈이의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최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TK 정치권이 피폐해지고 정치력이 엄청 약해진다. 좋은 물갈이가 돼야 하는데 교체율만 높이는 것이 좋은 물갈이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현역 국회의원의 기득권 옹호 발언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경북 국회의원을 살펴보자. 전체 13명 중 재선 의원이 김정재(포항 북구)·김석기(경주)·송언석(김천)·이만희(영천청도)·임이자(상주문경)·김희국(군위의성청송영덕) 의원 등 6명이다. 나머지 7명이 초선 의원이다. 국회 상임위원장 자격이 되는 3선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 이만희 의원은 지난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해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직전인 20대 경북 국회의원과 비교해 보자. 역시 13명 의원 중 4선 최경환(경산) 의원, 3선 이철우(김천)·김광림(안동)·강석호(영양영덕봉화울진) 의원 등 3명이었고, 이후 재선거를 통해 김재원(상주군위의성청송) 의원까지 합류했다. 재선은 박명재(포항 남구울릉) 의원이었다.

이 중 이철우 의원은 경북도지사로 옮겼고, 최경환 의원은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가 복권됐다. 김광림·강석호·김재원·박명재 의원은 불출마 또는 낙천했다. 그 빈자리를 초선 의원들이 채웠다. 공천을 거치면서 경북 정치권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나쁜 물갈이의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허주(고 김윤환 전 의원), SD(이상득 전 의원) 등 대한민국 정치권을 주무르던 거물뿐만 아니라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 권오을 전 의원 등 중진들에 대한 가까운 기억이 먼 추억이 됐다.

물갈이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경북 정치권의 10년 앞을 내다보며 물갈이를 해야 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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