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서 활동하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 허대만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한 해가 되었다. 그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 정치인이었는데 그의 부고는 전국적으로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그의 일관성과 성실성(integrity)에 대한 존경과 연민 때문이었다.
허대만은 서울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시민운동에 몸을 담았다가 지방자치가 실시되자 고향으로 달려와 포항시의원이 되었다. 전국 최연소 기초의원이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풀뿌리민주주의에서 출발하여 지역주의 극복을 정치적 목표로 삼았던 그의 나머지 정치 생활은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민주당 진영 후보로 일곱 번 출마하여 일곱 번 낙선하였고, 고단한 여정 끝에 그는 지난해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경향 각지에서 여, 야를 넘어 그의 마지막 길을 슬퍼하였다. 빈소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은 시시포스 신화 같은 그의 힘든 정치적 삶이 암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였다.
장례를 마친 후, 그의 유지를 잇자는 움직임이 민주당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데 매진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승자가 독식하는 선거제도를 그냥 두고는 그와 같은 애달픈 사연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정치적 다양성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선거제도 만들기는 평생을 지역주의와 싸웠던 허대만의 과업을 물려받는 일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보편적 과제이기도 했다.
대구, 경북 지역 정치권이 먼저 나섰고, 뜻있는 국회의원들이 토론회를 열고 선거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여, 야를 아우르는 초당파적 모임이 생겨나 선거제도 개혁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허대만에 대한 추모는 이러한 흐름을 밀어주는 힘이 되었다. 그 어렵다는 선거제도 개혁이 이번에는 이루어지려나 희망 같은 것도 보였다. 대통령도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얘기했고, 구체적 방안으로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서 언급하기까지 했다. 국회의장도 나서 국회의원 모두가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뜻을 피력하는 '전원회의'까지 열었다. 물론 이 과제가 본디 쉬운 일이 아닌지라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했고, 국회의장이 연 전원회의는 어수선하게 끝났다. 그러나 희망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회 전체에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각성은 괄목할 만할 정도로 생겼다. 우리나라 정치, 사회 원로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 이후 정치권의 마음이 딴 곳에 가 버려 지금 선거제도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시한을 넘기고 있다. '정치권의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현실이야말로 바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권은 지금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죽자 살자 싸우고 있다.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진영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정치권의 모습은 소선거구제가 분단 체제, 지역주의와 결합해 만들어내고 있는 철 지난 흑백사진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에너지를 다시 일깨워 저 칙칙한 흑백을 밝고 유쾌한 컬러사진으로 바꿔야 한다.
다시 대구, 경북 민주당이 나서야 할 상황이다. 대구, 경북 민주당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혁'의 깃발을 다시 치켜들기를 바란다. 가장 간절하기에 대구, 경북 민주당이 나서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나라 전체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대구, 경북 민주당은 정치권 전체를 향하여 외쳐라. 언제까지 흑백사진 정치를 하려는가. 삿대질 정치를 언제까지 하려는가. 대구, 경북 민주당은 동력을 잃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의 엔진을 다시 부팅해야 한다. 지난해 허대만을 떠나보내며 선거제도 개혁을 꼭 이루고 그것을 '허대만법'이라 하자고 했던 민주당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라. 대구 김부겸, 순천 이정현의 당선이 시혜성 '까치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치구조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만들라. 그것은 대구, 경북 민주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두 동강 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다.
민주당의 최전선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다 아까운 나이에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허대만을 기리며 대구, 경북 민주당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혁'의 깃발을 다시 들어 올리기 바란다. 그것은 대구, 경북 민주당을 살리는 일이고 민주당을 혁신의 길로 안내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전체의 정치개혁을 끌어낼 마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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