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결국, 사랑이야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고명재/ 난다/ 2023)

요즘 발표되는 시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문해력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며 끈기 있게, 더 많은 요즘 시를 읽어 봐야겠다 생각했다. 지역의 젊은 시인인 고명재가 출간한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읽었다. 이 시집을 읽으며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시에 대한 자세는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그 답을 그가 연이어 펴낸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이 산문집 '들어가며'에 벌써 독자를 강하게 흡입하는 한 구절이 있다.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라는 문장에 먼저 밑줄부터 긋는다. 이 책은 1부 '많이 깎을수록 곡물은 새하얘진다', 2부 '무의 땀은 이토록 흰빛이구나', 3부 '너무 보고플 땐 도라지를 씹어 삼킨다', 4부 '날 수 있음에도 이곳에 남은 천사들처럼', 5부 '조끼는 뚫린 채로 사랑을 해낸다' 등으로 구성, 각 부에 20편의 산문을 수록했다.

산문집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저자의 삶이 그의 고운 심성의 체를 통해 여리고 고운 언어로 만들어진 집처럼 느껴진다. 어린 시절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살며 켜켜이 쌓아둔 그리움, 자신을 키워준 비구 스님께 받은 사랑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등 시로 우화(羽化)하기 전의 문장들로 가득하다. 또 바게트, 치아바타. 크루아상, 프레첼, 베이글 등 여러 빵 종류를 시에 빗댄 '메뉴'라는 글에서 모든 일상을 시로 풀어내 시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고 시인은 이 책에서 "시란 인공관절 같은 것, 안에서 빛나며 느리게 계속 펼쳐지는 것, 돕는 것, 삶을 무릎을 슬하를 사랑과 걸음을 무지개처럼 일으켜 접고 걷게 하는 것, 경첩처럼 책처럼 자꾸 펼쳐지는 것, 양팔을 벌려 미끄러지듯 사랑을 안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가 정의한 시의 의미로 시를 읽어본다면 머리에서만 읽히던 시가 더 가슴 깊이 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자인 고명재는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바이킹'으로 당선해 등단했다. 영남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의 산문집은 세상은 그래도 살아갈 만하고 사랑으로 가득하며 존재만으로 빛나고 결국은 모든 것은 사랑에 귀결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거친 언어가 만연한 시대, 상처 나고 헤진 마음을 곱게 쓰다듬고 싶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존재함으로 꽃피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남지민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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