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문재인 정권의 ‘혁명적 패배주의’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좌파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거기서 매국(賣國)도 빠지지 않는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이를 체현(體現)한다. 레닌은 일찍이 "혁명은 궂은 사업이다. 흰 장갑을 끼고 혁명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념을 실천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1917년 10월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후 이전 로마노프 왕조 러시아가 독일과 벌였던 전쟁(1차대전 동부 전선)에서 발을 빼기 위해 독일이 강요한 굴욕적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동의한 것을 들 수 있다.

1918년 3월 3일 조인된 이 조약으로 신생 소비에트 러시아는 핀란드와 러시아령 폴란드, 발트 3국, 우크라이나 등 이전 로마노프 제국의 비(非)러시아계 영토를 전부 상실했다. 이로 인해 소비에트 러시아가 입은 손실은 엄청났다. 인구의 34%, 농지의 32%, 산업시설의 54%, 탄광의 89%가 날아갔다.

독일의 강요를 받아들인 목적은 비열했다. 권력을 잡았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볼셰비키의 세력 기반 강화였다. 레닌은 굴욕적으로라도 전쟁에서 발을 빼면 총구를 내부로 돌려 혁명 러시아 곳곳에 포진해 있는 '계급의 적'을 쓸어내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그에게 혁명과 권력 보호가 영토를 내주는 것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폴란드 출신 영국 정치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는 "레닌은 유럽에서 자국 정부에 대한 혁명적 패배주의(revolutionary defeatism)를 선언한 최초의 주요한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라고 했다.('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제2권 황금기') 혁명적 패배주의란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을 위한 내전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국 정부의 군사적 패배를 실현해야 한다는 소리다. 한마디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나라도 팔아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을 방어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환경영향평가를 5년 내내 뭉갠 문재인 정권의 행태도 혁명적 패배주의와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사드의 정상 운용을 저지한 안보 주권의 포기, 군사적 패배의 기정사실화이기 때문이다.

문 정권은 '사드 3불(不)'이 한국 정부의 단순 입장 표명일 뿐 국가 간 합의나 약속이 아니라고 했다. 최근 공개된 국방부 문서는 그게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준다. 2020년 7월 작성된 이 문서는 '3불'은 물론 '현재 배치된 사드의 운용을 제한한다'는 '1한(限)'도 중국과 '합의'이니 유지돼야 한다고 돼 있다. 문 정권은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1한'도 실상은 약속이나 합의였던 것이다.

그 약속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2017년 11월 13일 리커창(李克强) 당시 중국 총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회담에서 한 "사드 문제의 단계적 처리에 인식을 같이했다"가 그 대답의 실마리가 될 듯하다. 당시 외교부는 이를 "현 단계에서 문제를 봉합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측의 말은 전혀 달랐다. "한중 합의는 최종 목표를 향한 첫 단계, 최종 목표는 사드의 완전한 철수"였다.

이게 중국의 일방적 주장이 아님은 국방부 문서가 잘 보여준다. 문서는 "중국이 환경영향평가 절차 진행을 사드 최종 배치로 보고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돼 있다. 결국 문 정권의 고의적 환경영향평가 지연은 사드 철수를 목표로 한 '단계적 처리'의 시동(始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념적·정치적 목적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배역(背逆)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 최종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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