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노인 폄하 DNA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60대가 되면 뇌가 썩는다." 2004년 한 대학 강연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유시민 씨가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유 씨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은 이렇다. "30, 40대에 훌륭한 인격체였을지라도, 20년이 지나면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제 개인적 원칙은 60대가 되면 가능한 한 책임 있는 자리에 가지 않고, 65세부터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표현만 다를 뿐 '60대가 되면 뇌가 썩는다'는 말과 다름없다.

과연 그럴까. 미국 여성 심리학자 셰리 윌리스와 남편 워너 샤이가 1956년부터 40년간 7년마다 6천 명을 대상으로 뇌 인지능력 검사를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세부터 90세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남녀 참가자들 중 40~65세의 뇌가 '언어 기억' '공간 지각 능력' '귀납적 추리' 등 세 범주에서 최고의 수행 능력을 보였다. 20대의 뇌는 '반응 속도'와 '계산 능력'에서만 중년의 뇌를 앞질렀다.('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바버라 스트로치)

중년의 뇌는 충동적 결정을 잘 제어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대학 달립 제스트 박사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충동적인 감정에 관여하는 흥분 전달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기 때문에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을 덜 하게 된다고 한다. '노년의 지혜'란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얘기다.

과학이 증명해 내기 전부터 인류는 '노년의 지혜'에 의지해 왔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1984년 민주당 월터 먼데일과의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이를 상기시켰다. "세네카인지 키케로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연장자들이 젊은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 오지 않았더라면 역사에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노인의 투표권 비중을 낮추는 게 합리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노인 폄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발언 취지를 왜곡해 노인 폄하로 몰아간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당내에서도 '설화'(舌禍)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진보·좌파의 뿌리 깊은 '노인 폄하 DNA'가 발현된 것이 아니냐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04년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2011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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