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도 가족드라마는 가능할까. 물론 과거 같은 가족의 양태는 사라져가고 있고, 1인 가구들도 급증하고 있어 과거 고정된 형태의 가족드라마는 어려울 게다. 그런 의미에서 지니TV '남남'은 달라진 우리 시대의 가족드라마를 다시 그리고 있는 느낌이다.
◆이들은 모녀인가, 자매인가
지니TV 월화드라마 '남남'의 은미(전혜진)는 우리가 가족드라마에서 일상적으로 봐온 그런 엄마는 아니다. 벌써 나이부터가 너무 젊어 보인다. 동안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너무 일찍 엄마가 됐다는 의미다. 은미는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남자와 덜컥 아이를 가졌고 남자가 떠나자 딸 진희(수영)를 홀로 키웠다. 그러니 딸 진희와 함께 있으면 모녀라기보다는 자매처럼 보인다.
게다가 은미는 여전히 남자를 만나 즐기고픈 마음을 공공연히 딸에게도 드러낸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지나가는 몸 좋은 젊은 남자들에 눈길을 보내고 대뜸 딸에게 클럽이라도 가자고 한다. 클럽이 안 되면 나이트라도. 그런 딸 같은 엄마 때문인지 진희는 엄마 같은 딸이 됐다. 그런 엄마를 단속(?)하려 하고 무심한 척 하면서도 엄마를 걱정하고 챙기려 한다.
은미와 진희의 모녀 관계가 거꾸로 뒤집어져 있는 걸 극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딸 진희가 엄마의 자위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대목이다. 보통은 거꾸로 일어날 일이지만 그렇게 딸에게 보이지 말아야했을 걸 들키고도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치킨 어떠냐?"고 묻는다. 오히려 딸이 당혹스러워 하는 이 장면이 보여주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틀에 박힌 가족의 형태와 그 역할에 대한 전복이다.
우리에게 이른바 '정상 가족'이라고 늘 가족드라마들이 내세웠던 형태는 부모와 아들, 딸이 함께 지내는 그런 모습이다. 심지어 교과서에서도 가족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늘 이 '정상 가족'의 틀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현재는 과거 같은 대가족 형태가 사라진 지 오래고, '정상 가족'이라고 틀을 정할 수 없을 만큼 가족의 양태도 다양해졌다. 결혼만큼 이혼도 늘고 있고 그래서 싱글맘, 싱글대디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성 소수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성 가족들도 법 테두리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니 '정상 가족'의 틀을 내세우는 건 다른 가족의 양태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가족 형태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 건 가족 구성원들의 틀에 박힌 역할이다. 남편은 일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육아와 가사를 돌보는 시대는 지났다. 맞벌이 부부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싱글맘, 싱글대디라면 이러한 역할은 성별로도 또 부모와 자식 간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과거 형태의 가족드라마가 공감을 얻기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다.
'남남'의 은미와 진희가 보여주는 건 바로 이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다. 싱글맘 가족에 모녀라기보다는 자매 같은 관계에다, 그 역할도 누가 누구를 돌본다기보다는 마치 친구처럼 서로 챙기는 그런 관계. 이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가족이라고 '남남'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남 같은 가족, 가족 같은 남남
'남남'은 나아가 타인이지만 오히려 더 가족 같은 남남과 가족이지만 차라리 엮이지 않는 편이 나을 법한 남남 같은 가족을 비교해 보여준다. '가 '족' 같은'이라는 부제를 단 3회의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은미는 어느 날 한 노인의 등에 난 상처를 보고 그것이 가정폭력의 흔적이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노인은 애써 그냥 다친 거라며 진료도 거부한 채 돌아간다. 노인과 함께 온 아이 또한 자신이 다가가자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며 역시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는 걸 감지한 은미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관할경찰서에 신고하고, 경찰인 진희는 현장을 찾아가 그 집 아들이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해왔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아들이 불이익을 받는 걸 원치 않는 노인이 이를 부인하고, 가해자가 은미가 일하는 병원까지 찾아와 난리를 치면서 사건이 커진다.
은미라는 캐릭터가 본래 남일 참견하길 좋아하고 잘못된 걸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인 건 맞지만, 그가 이토록 이 문제에 나서게 만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자신 또한 똑같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으로 덜컥 아이를 갖게 됐던 딸 은미는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인 폭력을 당해왔다. 어렸던 진희 역시 엄마가 맞는 장면을 목격하며 자랐다. 그랬던 은미를 구원해준 건 바로 그의 절친이었던 미정(김혜은)이었다. 은미의 상황을 알게 된 미정은 안 되겠다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고, 미정의 엄마는 그런 은미와 그의 딸 진희까지 보듬어 진짜 딸처럼 키워주었다. 그래서 은미와 진희는 미정과 그의 엄마를 '진짜 가족'으로 여긴다. 이건 미정과 그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미정은 은미에게 말한다. "기저귀를 갈아가면서 키웠는데 당연하지. 너만 아니었으면 진희 걔 내 딸이야."
혈연으로 엮여 있다고 가족일까. 그것이 오히려 족쇄가 되는 가족이라면 진정한 가족이라 말할 수 없을 게다. 대신 혈연은 아니지만 진짜 구원이 되어준 존재라면 진짜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은미와 진희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그 혈연으로 엮인 가족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으로 끌어안아준 미정네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니 말이다.
◆'가정폭력 생존자' 보듬는 시선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은미와 진희는 '생존자'다. 가정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다. 그래서 진희가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이나, 진희가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를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들은 모두 생존자로서 누군가의 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걸 막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인물들이 됐을 테니 말이다.
중요한 건 '남남'이 그리고 있는 이 새로운 가족 양태가 가진 파격을 이 드라마는 어떻게 담고 있느냐다. 사실 가정폭력이나 경찰이라는 직업 때문에 생겨나는 범죄들은 드라마가 다소 극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소재인 게 분명하다. 또 이러한 피해를 입은 가족을 보듬어 안은 미정네 가족의 이야기 또한 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남남'은 이 극적인 이야기를 과한 극적 구성으로 담아내기보다는 담담한 시선으로 전해준다. 그건 마치, 이런 일은 특별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건 진희가 일하는 파출소 사람들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 드라마의 태도다. 가정폭력 사건 앞에서도 무심한 척 보였지만 은재원(박성훈) 파출소장은 그 피해자들이 걱정돼 집 주변을 서성였고, 파출소 사람들도 각자 의심되는 증거들을 찾기 위해 알아서 백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슬쩍 진심을 꺼내놓거나, 대단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일인 양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남남'이라는 드라마가 의외의 따뜻함을 주는 방식이다.
싱글맘이거나 모녀가 아닌 자매 같은 케미거나 혹은 이들이 가정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거창한 시선을 '남남'은 굳이 취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는 그런 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고 오히려 행복을 찾아간 이들의 당당한 선택일 수 있다는 걸 드라마는 이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가족이란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가부장제의 시대에 이른바 '정상 가족'의 범주로 틀 지워졌던 가족이 아니라, 그 어떤 형태로든 심지어 혈연이 아니라도 진짜 가족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남남'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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