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인디애나 존스, 고대 컴퓨터 안티키테라와 아르키메데스

역사는 영화처럼 과거와 현재가 톱니바퀴로 맞물려 돈다

이탈리아 시라쿠사 앞바다. 영화에서 인디애나 존스 일행이 탄 비행기가 시간을 거슬러 불시착한 곳으로 로마 군사들이 공격하던 장소다.
이탈리아 시라쿠사 앞바다. 영화에서 인디애나 존스 일행이 탄 비행기가 시간을 거슬러 불시착한 곳으로 로마 군사들이 공격하던 장소다.

공상과학 영화 [죠스], [쥬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해리슨 포드를 발탁해 [스타워즈]에 이어 1982년 내놓은 작품이 [인디애나 존스:레이더스]다. 야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언약궤(십계)' 스토리다. 1985년 중국과 티벳을 배경으로 2편, 1989년 예수 그리스도가 12제자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포도주잔(성배) 탐사를 그린 3편에 이어 2008년 남미 페루를 배경으로 4편, 그리고, 15년 지나 이번 여름에 5편이 나왔다.

2가지가 달라졌다. 감독이 바뀌었고, 무엇보다 주연 헤리슨 포드의 나이가 81살 고령이다. 고난도의 액션이 요구되는 모험영화 주인공을 맡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 도움을 받은 컴퓨터 그래픽이 우려를 감쪽같이 걷어냈다. 이제 세상을 떠난 배우의 재등장도 개봉박두로 보인다.

이번 5편 [인디애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의 핵심은 시간을 되돌리는 컴퓨터 다이얼 '안티키테라'와 이를 만들었다는 "에우레카(알아냈다)"의 고대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안티키테라'와 아르키메데스의 역사로 들어가 본다.

안티키테라 기어장치. B.C3-B.C1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안티키테라 기어장치. B.C3-B.C1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안티키테라' 유물

현대 지구촌 문명의 남상(濫觴)으로 불리는 그리스 수도 아테네로 가보자. B.C 490년 페르시아 전쟁 승리 소식을 전한 병사 페이디페데스가 쓰러진 판아테나이카 도로,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만나던 김나지온, 플라톤이 만든 서양문명권 최초의 교육기관 아카데메이아 터가 오롯하다. 2천 500여년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생생한 유물들이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 즐비하다.

그중 청동유물 하나가 탐방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둥근 청동판에 세밀한 눈금,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가는 형태의 유물 이름은 '안티키테라(Antikythera)'. 안내 설명에는 인류 역사 최초의 아날로그형 컴퓨터라는 설명이 붙었다.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한 아크로폴리스와 프닉스 언덕 사이에 그리스 고대 과학기술을 다루는 헤라클레이돈 박물관이 자리한다.

이곳에도 진품은 아니지만, 복원품을 통해 안티키테라 기계장치의 작동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안티키테라는 무슨 뜻일까? 실은 그리스 에게해의 섬 이름이다.

안티키테라 유물 전시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안티키테라 유물 전시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안티키테라 사용설명서. 그리스문자로 빼곡하게 적혀 있다. B.C3-B.C1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안티키테라 사용설명서. 그리스문자로 빼곡하게 적혀 있다. B.C3-B.C1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안티키테라' 에게해 섬 해저 출토 유물

그리스와 에게해 지도를 펼쳐보자. B.C776년 고대 1회 올림픽이 열린 올림피아, 영화 [300], 식스팩 최강 전사들의 나라 스파르타가 자리한 곳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래 에게해에 인구 100여명(2011년 조사)의 작은 섬, 안티키테라가 보인다. 1900년 4월 한 그리스 어선이 조업중 폭풍우를 피해 이 섬에 일시 정박했다.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다 배에 탔던 잠수부 스타디아티스가 수산물 채취를 위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해저 45m 지점에서 뜻밖에 난파선을 발견했다. 신고를 받은 그리스 정부가 본격 발굴에 나서 1900년부터 이듬해 1901년 사이 수많은 유물을 건져 올렸다. 청동과 대리석 조각, 유리, 보석류, 동전... 여기에 가로 34cm × 세로18cm × 두께9cm 나무 상자가 나왔고, 그 속에 톱니바퀴 달린 기계장치가 들어 있었다.

안티키테라 복원품.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안티키테라 복원품.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안티키테라 복원 부품. 아테네 헤라클레이돈 박물관
안티키테라 복원 부품. 아테네 헤라클레이돈 박물관

◆100년 넘게 연구중인 '안티키테라', 2100년 전 컴퓨터

유물이 발견된 다음 해인 1902년 5월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의 고고학자이자 박물관장이던 스타이스 박사는 이 유물이 기어장치라는 것을 밝혀냈다. 4개의 기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지름 13cm였다. 기어에는 모두 223개의 톱니가 달려 있었다. 표면에는 그리스 문자가 빼곡히 적혀 있는데, 기계 사용법으로 밝혀졌다.

스타이스 박사는 천문시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단순 천문시계라고 보기에는 너무 정교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영국 과학사가이자 예일대학교 프라이스 교수가 1951년부터 안티키테라 연구에 들어간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도 많은 연구와 현장 추가 수색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용도는 해와 달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며 4년에 한 번 열리는 그리스 민족 최대 축제, 올림픽 개최 연도를 알려주는 다용도 아날로그 컴퓨터다. 이 정도 관측 능력을 갖는 장치가 유럽에 다시 등장한 것은 14세기 이후다.

학자들이 밝혀낸 로마 선박의 침몰 연대는 B.C70-B.C60년 사이, 안티키테라 장치의 제작연대는 B.C205년-B.C87년이다. 가장 최신 연구결과는 2022년 4월 미국 출판 편집자 웰레트가 'Ars Technica' 웹사이트에 발표한 B.C178년 12월 23일설이다. 이제 '언제'를 떠나서 누가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살펴보자.

이탈리아 시라쿠사에 있는 아르키메데스 동상.
이탈리아 시라쿠사에 있는 아르키메데스 동상.

◆'안티키테라',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가 만들었을까?

먼저, 에게해 로도스섬에서 히파르코스(B.C190?~B.C120?) 제작 가설이다. 달이 지구 원지점보다 근지점에서 공전 속도가 더 빨라지는 불규칙 궤도를 전제로 안티키테라 장치가 제작됐는데, 이 학설을 주장한 인물이 로도스의 히파르코스다. 침몰 선박에서 로도스풍 도자기가 발굴된 점도 설득력을 더한다.

둘째 가설이 인디애나 존스 영화에서 채택한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 제작설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르키메데스가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다.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에우레카(EUREKA, 알아냈다)" 발언의 주인공 아르키메데스는 B.C287년경 태어나 B.C212년 경 죽었다.

카르타고 한니발이 일으킨 2차 포에니 전쟁에서 그리스 국가인 시라쿠사는 카르타고를 지원했다. 이에 로마는 시라쿠사를 보복 공격했으며 이 와중에 아르키메데스가 B.C212년 경 70세 가량 고령으로 로마병사에게 살해됐다. 안티키테라 장치의 가장 오래된 제작 가설이 B.C205년이니 아르키메데스가 죽은 뒤다. 아르키메데스의 제자들이 만들었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디오니소스의 귀.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서 운명의 다이얼을 찾으러 들어가는 동굴의 모 델. 이탈리아 시라쿠사
디오니소스의 귀.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서 운명의 다이얼을 찾으러 들어가는 동굴의 모 델. 이탈리아 시라쿠사

그리스 극장 위 폭포. 영화에서는 디오니소스의 귀로 들어가면 물줄기가 나오지만, 디오니소스의 귀는 내부가 막힌 동굴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동굴 내부 물줄기는 실제 디오니소스의 귀 동굴 밖 그리스 극장 위쪽에 자리한다. 이탈리아 시라쿠사
그리스 극장 위 폭포. 영화에서는 디오니소스의 귀로 들어가면 물줄기가 나오지만, 디오니소스의 귀는 내부가 막힌 동굴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동굴 내부 물줄기는 실제 디오니소스의 귀 동굴 밖 그리스 극장 위쪽에 자리한다. 이탈리아 시라쿠사

◆영화의 무대, 디오니소스의 귀와 동굴 폭포

인디애나 존스 영화의 무대 시라쿠사로 가보자. 8월의 시라쿠사는 35도를 오르내리며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붉은 태양이 이글거린다. B.C 3세기 말 로마에 병합될 때까지 시라쿠사는 B.C7세기 그리스 본토 코린토스 사람들이 개척한 식민도시로 발전했다. 한 때 아테네에 버금갈 만큼 학문과 상업이 발달한 그리스 국가였다. 지금은 당시 만든 고대 그리스 극장 유적이 남아 시라쿠사의 전설을 토해낸다.

시라쿠사는 무엇보다 플라톤이 B.C370년 전후해 이상적인 철인지배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극장 바로 옆에 영화에서 인디애나 존스가 운명의 다이얼을 찾기 위해 들어간 거대한 석회동굴 '디오니소스의 귀'가 자리한다.

과거 저수장이자 아테네와 시라쿠사가 전쟁하던 시기 B.C413년 아테네 포로들을 가두던 감옥이었다. 동굴은 깊이 50여m에 불과하지만, 영화에서는 계곡물이 흐르는 깊은 동굴로 그렸다. 작은 폭포와 물줄기는 '디오니소스의 귀' 동굴 위 바깥에 자리한다. 영화에서 극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이탈리아 시라쿠사에 있는 아르키메데스 무덤. 영화에서 동굴 속 급류를 지나 나오는 것으로 설정된 아르키메데스 무덤은 실제 디오니소스의 귀 위 오른쪽 200여m 지점에 자리한다.
이탈리아 시라쿠사에 있는 아르키메데스 무덤. 영화에서 동굴 속 급류를 지나 나오는 것으로 설정된 아르키메데스 무덤은 실제 디오니소스의 귀 위 오른쪽 200여m 지점에 자리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도시 시라쿠사, 아르키메데스 무덤

영화에서는 동굴 내부 물줄기를 거슬러 깊숙한 곳에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이 나오는 것으로 설정됐다. 실제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은 '디오니소스의 귀'에서 동쪽으로 200여m 지점 야외에 위치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실존 인물과 실재 유적, 자연 지형을 적절하게 각색한 픽션이다.

영화에서 인디애나 존스 일행이 탄 비행기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불시착한 시라쿠사 항구 근처 바닷가. 영화에서 2천2백여년 전 침략군 로마 병사들로 붐볐지만, 지금은 여름 바다를 즐기는 각국 피서객들로 북적인다. 이를 바라보고 선 아르키메데스 동상에 고대의 학문과 역사, 현대의 문화가 한데 어울러진다. 마치 영화 속 시간을 조절하는 운명의 다이얼처럼...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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