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방언에 '시건'이란 말이 있다. 한자어 식견(識見) 혹은 소견(所見)에서 온 말로 추정된다. '시건이 있다/없다' '시건이 났다' '시건이 들었다' 등으로 쓰인다.
'시건이 없다'는 말은 '철이 없다'는 말보다 더 복합적일 뿐만 아니라 비판의 강도가 훨씬 세다.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시건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도 남는다. '사람이 안 됐다'는 뜻으로 여겨지기에 듣는 쪽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다. 이 말을 듣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게 경상도 사람들이다.
시건이 있으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광범위한 지식에다 경험, 그리고 판단력이 더해져야 한다. 공부를 하는 것은 시건을 갖춰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며, 자신의 위치와 분수를 파악하고,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할 때 비로소 시건이 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진실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사리 분별을 하는 시건을 갖추면 엉뚱한 짓, 터무니없는 짓, 유치한 짓을 하지 않게 된다.
21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3년여 동안 여·야 가릴 것 없이 시건 없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여줬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문제이거니와 그 잘못을 덮으려고 말도 안 되는 언사를 보여줘 시건 없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가상 자산(코인) 문제로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로부터 제명 권고를 받은 김남국 무소속 의원은 국회 상임위 회의 도중 200차례가 넘는 코인 거래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의원이 국민 세금 받고 국정을 논하는 시간에 전업 투자자처럼 코인에 몰두했다. 자신의 신분과 자리를 망각한 참으로 시건 없는 행위다.
극한호우로 최악의 수해가 발생했는데도 해외 출장을 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시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집중호우 피해 방지 법안 심사를 앞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까지 출장을 갔다. 쏟아진 비판에 일정을 취소하고 조기 귀국했지만 "국민들 보시기에 적절치 않았다면 사과를 드린다"는 사과에 조건을 단 발언이 더욱 국민 부아를 치밀게 만들었다. 지난해 수해 복구 현장에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한 국민의힘 의원도 시건이 없었다. 내년에 출범하는 22대 국회에서는 시건 없는 의원들이 그만 나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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