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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의 마음과 마음] 정신신체의학에 대하여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무더운 여름날, 일터를 떠나 휴가를 즐긴다는 것은 엄청난 설렘이다. 휴가 여행은 일의 중압감과 스트레스에서 멀찍히 떨어져서 과열된 몸과 마음을 식혀준다. 경제적 여유도 필요하지만, 신체적 자유가 있어야 가능한데도, 우리는 흔히 신체적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잊고 지낼 때가 많다.

혈액 투석을 받게 되면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빠진 남자 환자가 내원하였다. 일주일에 세 번 병원을 가서 네 시간 동안 기계에 몸을 맡겨야 했다. 신장은 혈액에서 노폐물을 걸러내고, 체내 수분 양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신장이 망가지면 독소가 쌓이고, 소변이 나오지 않아서, 체내에 수분이 그대로 고인다. 몸이 붓고 폐에 물이 차고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만약 한번이라도 투석을 건너뛰게 되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어느 해변처럼, 죽음의 시간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그는 이제 육십 중반인데, 자수성가로 많은 재산은 일구었지만 자신의 콩팥은 지키지 못했다. 후회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에 이르고 보니 지난 날 자유의 시간이 그리웠다.

짐을 실은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졸음쉼터에서 잠도 자고 휴게소에서 라면도 먹고, 돈은 없어도 두려움이 없었던 지난 날들이 그리웠다. 지금 한여름 무더위에 목마르다고 물을 마실 수도 없고,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먹을 수도 없으니 삶의 즐거움의 공장은 폐쇄되었다.

지금까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왔지만, 지금은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들 때문에, 또 기계에 매달려 사는 자신 운명때문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만성신부전이 아니라 우울증과 좌절감이었다.

우리 몸은 뇌- 마음- 신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이 분야를 정신신체정신의학이라고 한다. 심한 질병에 걸리면 당연히 우울할 수밖에 없고, 이것을 과거에는 반응성 우울(reactive depression)이라고 했다. 지금은 염증성 우울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운동을 심하게 해서 관절염이 오고, 관절이 아프니까 마음이 우울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관절에 염증이 있으면 통증이 있고, 염증 세포가 만든 염증 물질은 혈관을 타고 뇌로 가서, 뇌기능에 영향을 주어서 우울감을 만들 수 있다. 상당수의 우울증은 염증이 원인일수 있다. 향후 10년 안에 염증을 가라앉히는 진통소염제가 항우울제로 개발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제 우울하면 소염제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우울한 기분이 동반되지 않은 우울증이 많다. 일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아서 아무리 내과를 다녀도 낫지 않아서 정신과로 오셨다는 분들이 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니 감기 증세가 다 사라졌다. 그래서 우울장애는 성격이 안좋거나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뇌기능이 떨어진 상태라고 인식하는 게 맞다.

영양정신의학이란 분야도 있다. '우리는 뭘 먹어야 몸이 건강해지는가' 라는 질문을 자주 하지만, 뭘 먹어야 우울하지 않을 수 있나 라는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마음-몸(소화기)-뇌가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우울증일 때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위장은 제 2의 뇌라고 한다.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위장관에서 많이 생성되고 있다.

마음은 뇌와 대화로 소통한다면, 장은 음식으로 소통한다. 마음에 좋은 음식과 몸에 좋은 음식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지중해식 식사(과일 생선 잡곡 채소 같은 것을 주로 먹는 것)는 스트레스 받을 때 찾게 되는 자극적인 음식과 달리 우울증 예방 효과가 있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2,798 명의 염증성 장질환 환자 중 크론병의 20%, 궤양성 대장염 환자의 14%가 우울 증상이 동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이런 우울 증상이 동반되면 추후 염증성 장질환의 재발, 수술 또는 입원하게 될 확률 1.3 배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즉, 우울증 혹은 우울이나 불안증상은 염증성 장질환을 치료 해 나가는 과정에서 흡연, 음주, 자극적인 음식을 먹거나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것과 함께 재발, 입원, 수술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의 분포는 정신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익군이 많아지면 장이 편해지고 마음도 같이 편해진다. 장내유익균이 잘 먹는 먹이를 주면 균이 좋아지니 염증 물질이 줄고 뇌의 치매 진행도 막아서 치매 예방효과가 있어서 치매 치료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런 유익균을 증식시키기 위해서는 뭘 먹느냐가 중요하다. 장내유익균들이 좋아하는 잡곡 견과류 과일 등을 주로 먹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하루 아침 식사 한 끼는 뱃속의 파트너를 위한 음식을 먹는 것도 좋다. 아침 공복의 해독쥬스는 장내 유익 미생물의 좋은 먹이 공급이 되어 튼튼한 장을 가지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면역기능이 떨어져서 마음 몸 뇌 3개중에 하나만 삐끗해도 문제가 올수 있다. 나사를 너무 세게 조이면 나중엔 망가져서 나사가 겉돌게 되듯이, 전기가 누전이 되면 차단기의 스위치가 내려가듯이 우리 몸도 퓨즈 나가듯이 갑자기 멈추게 된다. 몸의 균형이 깨지면 가장 먼저 불면증이 온다.

밤에도 스위치가 꺼지지 않고 계속 일하는 공장처럼, 너무 스트레스 공장을 많이 돌리다보면 관성으로 밤중에도 머리가 핑핑 돌고 졸려도 잠이 오지 않고 작은 자극에도 예민해져서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강력한 쾌감을 주는 자극을 찾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는 우리의 뇌에서 코카인을 할 때와 비슷한 양의 도파민이 분비된다. 아주 자극적인 음식, 마약 떡볶이 마약 김밥 같은 메뉴가 인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트레스 자극과 쾌락 행동은 케미가 아주 잘 맞아서 술 담매 마약 폭식 등의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스트레스가 지속 될 때는 재빠른 대응도 필요하지만, 자극에서 좀 떨어져있는 시간도 중요하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과도한 업무, 그리고 외로움이 엄습할 때 너무 정신차리라고 채찍질 하지 말고 잘 버티고 있는 나를 대견하다고 안아주자. 인생은 흐름이 있기 때문에 또 지나가면 상승기류를 탈수도 있다. 나의 투석 환자, 눈물의 그 분, 한 생을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익어가는것을 몸소 보여주신 그 분, 삶의 희망과 우수를 들려주러 다시 진료실을 찾을 것이다.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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