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출이 예전 같지 않다. 정부는 이에 수출의 플러스 전환을 위한 정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 특히 중소기업은 생존하려면 3고, 3가지 고비를 넘어야 한다고 한다. 먼저 기술을 가져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 시설을 갖추어야 하며,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내수 또는 수출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기업의 연구개발 촉진을 위해 연간 30조 원의 R&D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생산 제고를 위해서 산업단지 조성,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해외 판로의 경우 코트라(KOTRA), 조달청 등을 통해 수출 활동을 지원한다. 특히 기업들의 수출 지원을 위한 해외 인증 획득도 지원한다.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많지만, 전 세계 무역의 80%가 표준과 인증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작년 우리나라 기업인이 회장으로 선출된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제정하는 ISO 인증이 있다. 예를 들면, 품질경영시스템인증(ISO 9000)은 1987년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제정했는데, ISO 통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약 100만 개 이상의 품질경영시스템인증이 이루어지고 있다.
요즈음 경기도 어렵고 수출도 가뜩이나 힘든데 비용을 들여가며 ISO 인증을 획득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놀랍게도 우리 기업들은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어려운 시기에도 ISO 품질경영시스템인증을 적극 획득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부터 ISO 품질경영시스템인증이 본격 시작되어 1993년부터 인증서가 발급되었는데, 매년 10% 이상 증가하였으며 작년에는 33.3% 증가하였다. 그만큼 이득이 있다는 이야기다.
인증을 획득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예전에 ISO 인증 획득이 단지 납품을 위한 불필요한 비용으로 인식되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제는 기업의 경영 품질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신용평가, ESG 경영평가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은 물론 소비자, 정책 수립자에게도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ISO 인증은 ISO 국제표준에 따라 이루어진다. 국제적으로 ISO 인증서의 통용성이 보장되고 있으므로 국내에서 인증받은 기업은 수출 시 중복 인증을 받지 않아도 수출이 가능해진다. 최근에는 기업들의 환경경영, 사회적 책임경영, 투명경영 등 ESG 경영이 강조되면서 기업들은 이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는데, ISO 인증 획득을 통해 ESG 경영 공시 제도 등에 적극 대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둘째, 소비자에게는 ISO 인증이 그 회사가 고객의 기대와 요구를 만족시키는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회사의 제품 또는 서비스 구매 시 훌륭한 구매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복 규제 완화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법정 인증 제도는 무려 222개가 있다고 한다. 모두 행정 규제이다. 기업들은 규제 완화, 중복 규제 철폐를 외치지만, 행정 규제는 국민의 안전, 환경보호 등 각각 합리적인 존재 이유가 있다. 규제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는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는 묘안은 없을까?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있다. 정부의 법정 인증 제도를 ISO 인증 등 국제표준을 우선 인용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이다. 국제표준에 없거나 불충분하다면 그만큼만 최소한으로 규제를 추가하면 될 것이다. 현재도 기술규제 영향평가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기업은 국제표준을 획득함으로써 불필요한 중복 규제, 인증의 비용 부담에서 벗어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당국자는 소기의 규제 목적을 달성하면서 그만큼 행정력 낭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벌레라는 애벌레가 있다. 자(尺)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몸을 구부렸다가 펼쳐서 앞으로 나간다. 주역에서는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그 몸을 펼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위험하다고 느끼면, 마치 조그마한 나뭇가지인 척하며 이파리에 들러붙어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수출 플러스 전환을 위해서는 기업들이 편안하게 경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제표준인 ISO 인증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우리의 수출도 자벌레가 몸을 펴듯이 펼쳐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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