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물주 위 건물주?

최경철 논설위원
최경철 논설위원

며칠 전 건물주들이 모여 소줏잔을 기울이는 자리에 끼어 앉았다. "죽지 못해 살고 있다" "겨우 숨만 쉬고 지낸다"는 하소연이 쏟아졌다. 엄살이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서로 자신이 보유한 건물 임대 수익률을 비교하는 대화를 곰곰이 듣고 보니 그들의 얘기가 과장만은 아님을 체감할 수 있었다. 건물 임대 수익률이라는 어휘를 끌어올 처지도 못 되고 이것저것 다 떼고 나면 그야말로 '푼돈'만 손에 쥔다는 것이었다.

급등한 이자율로 인해 빚을 조금이라도 떠안고 건물을 지은 사람들은 이자 때문에 허덕이고 있었다. 최근 이자율 급등세가 조금 진정됐다고 하지만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낸 건물주들은 이자를 또 올린다는 문자가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토·일요일에도, 은행 문을 닫는 밤에도, 이자는 쉬지 않고 몸집을 불려 가며 건물주의 통장 잔고를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갈수록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는 세태도 심화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외출이 확 줄었고, 이로 인해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불어난 인건비 탓에 종업원을 쓰는 가게는 도저히 수익률을 맞추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가게 열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로 인해 임대 시장이 얼어붙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말도 들렸다.

공실을 막기 위한 건물주들의 박리다매 임대 전략이 나오고 있지만 올라가는 공실률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달 말 내놓은 2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대구의 오피스 공실률은 10.3%(9.4%), 중대형 상가는 15.9%(13.5%)로 괄호 안 숫자인 전국 평균보다 높다.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지는 대구는 아파트 상가도 대량 공급돼 임대 시장은 공급 초과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한때 조물주 위 건물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 됐던 건물주들에게 "꼴좋다"는 조롱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왜 자신들의 종잣돈을 만들어준 산업 현장을 떠나 건물 시장으로 달려갔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제조업하는 사람을 무조건 '악덕 기업주'로 몰아붙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세태가 건물 지어 편안히 살려는 인생을 조장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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