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70대는 투표를 안 해도 된다."(70세 정동영 씨), "30, 40대에 훌륭한 인격체였을지라도 20년이 지나면 뇌세포가 변한다."(64세 유시민 씨),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 표결을 해야 하지?"(58세 김은경 씨) 노인은 살날이 적어서 이해관계가 작으니 투표권도 작아야 한다. 이 말이 하고 싶었나? 젊은 사람은 살날이 많아서 이해관계가 크다. 그래서 2019년 투표권을 18세까지 확대했다. 앞으로 투표권은 계속 확대될 것이다. 젊은 사람은 이해관계가 크니 투표권도 커야 하나? 이는 투표권을 차등적으로 배분하자는 말이다. 저 세 사람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으니, 이번엔 이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해관계' 대신 우리 사회에 '기여'(寄與)한 정도에 따라 투표권을 나누면 어떤가? 논리는 이렇다. 투표권은 국민의 중요한 권리이다. 사회에 기여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권리를 줄 수 없다. 크게 기여한 사람은 투표권이 커야 한다. 사회적 기여도를 어떻게 측정하는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지표(指標)는 역시 돈이다. 납세액(納稅額)을 기준으로 투표권을 줄 수 있다. 노인은 '살날이 적지만' 그동안 세금을 많이 냈기 때문에 투표권이 커진다. 젊은 사람은 '살날이 많더라도' 투표권이 작아진다. 대체로 세금은 소득에 비례한다. 학생, 실업자, 가정주부, 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자영업자는 투표권이 축소된다. 고소득자의 투표권은 1표를 초과한다. 이재용 씨나 최태원 씨의 투표권은 얼마가 될까? 1만 표? 100만 표? 이 두 사람의 표가 대통령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이 상황은 금권정치(金權政治)와 다르지 않다.
이런 반론(反論)이 있다. 고소득자는 사회에 기여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이 주장이 옳은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납세액 말고도 사회적 기여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많다. 병역(兵役)이 대표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제한된 자원이다. 그 소중한 자원을 국가에 바친 사람은 투표권이 커야 한다. 사회에 대한 기여는 말이 아닌 행동이다. 병역 이행(履行)은 행동이다. 병역을 이행했는가, 병역 기간이 얼마인가, 얼마나 힘든 병역을 이행했는가에 따라 투표권의 크기를 결정할 수 있다. 아마도 대다수 여성의 투표권이 작아질 것이다. 물론, 미필(未畢) 남성의 투표권도 작아진다. 이 제안이 황당한가? 노인의 투표권을 축소하자는 주장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노인의 투표권을 줄이자는 말속에는 두 개의 고약한 논리가 숨어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머리가 나빠진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 1표를 행사하면 안 된다. 이 논리를 일반화하면 투표권의 크기는 지적(知的) 능력에 비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투표권을 어떻게 나눌까? IQ가 100 미만이면 0.75표, 100~120이면 1표, 120을 초과하면 1.5표를 줘야 하나? 대학교 졸업자를 기준으로 학력이 그 이상인 사람에게 2표를 주면 어떤가? 수능시험 만점자(滿點者)는 1만 표를 줘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보통선거가 원칙이다. 모든 국민은 나이, 성별, 소득, 학력과 상관없이 1표를 행사한다. 보통선거는 그 역사가 길지 않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희생을 통해 쟁취(爭取)한 제도이다.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보통선거도 흠결(欠缺)이 많다. 효율적이지도 않다. 지식인이나 '잘난' 사람의 눈에는 터무니없는 제도로 보일지 모른다. 소설 '동물농장'의 독재자 돼지가 이들을 대변(代辯)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통선거는 독특한 제도이다. 시장(市場)에서는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지 않는다. 돈이 많은 사람이 많은 표를 행사한다. 잘난 사람의 몫이 못난 사람의 몫보다 크다. 그것이 시장의 논리이다. 보통선거에는 공화(共和)라는 가치가 들어 있다. 공화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공적인 의사결정을 '더불어' 한다. '더불어'에는 'n분의 1'의 의미가 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몫이 같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공화국이 아니다. 보통선거를 흔드는 자(者)는 공화국의 적(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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