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구개념 예능 ‘홍김동전…1년 버텨낸 비결

생각 없이 보다 빵, 빵 터져…1% 시청자 취향 저격
여름 공포 체험·분장쇼·상황극…어디서 본듯한 예능의 공식 동원
젊은층엔 신선 매력 OTT 입소문

KBS
KBS '홍김동전' 포스터. KBS 제공

KBS '홍김동전'은 특이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상파 그것도 KBS에서 시청률이 1%대라면 폐지되는 게 다반사지만, 벌써 1년을 버텨냈기 때문이다. 어딘가 과거에 봤던 소재들이 매 주 펼쳐지는 이른바 '구개념 예능'을 아예 주창하고 있는 이 예능의 경쟁력은 뭘까.

◆익숙한 구개념 예능이지만…

지난달 27일 방영된 KBS '홍김동전'은 '스카우트 특집'으로 마련됐다.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제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맞춰진 기획이다. 물론 이런 국제적 망신이 될 줄은 결코 몰랐을 테지만, 방송 또한 어떤 방식으로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홍김동전'이 보여줬던 '스카우트 특집'은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목은 '스카우트 특집'이었지만 실상 보여준 건 여름철을 겨냥한 '공포 체험 특집'이었기 때문이다. 수련원을 배경으로 각자 챙겨온 보물들을 숨겨 놓고 찾는 미션에서 곳곳에 숨겨진 공포 체험이 이어졌다. 갑자기 발목을 잡으며 "내 다리 내놔"라 외치는 귀신부터 화장실에 숨어 있다 씨익 웃으며 나타나 소름 돋게 만드는 소복차림의 귀신, 관절을 이상하게 꺾은 채 사람 같지 않은 기괴한 느낌으로 달려드는 좀비 같은 인물까지, 이를 보고 기겁하고 도망치는 출연자들의 호들갑이 웃음을 줬다.

물론 이런 예능의 공포체험 특집은 중장년 시청자들이라면 익숙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여름철만 되면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식상하게 다가오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른바 '아는 맛'으로서의 재미는 분명히 주는 면이 있다. 혹자는 그저 게으른 선택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홍김동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가져온 새로운 전략이다. '홍김동전'은 시작부터 '구개념 버라이어티'를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구개념'이란 '신개념'의 역발상이다.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새로움이나 신개념은 늘 추구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그런데 정반대로 '구개념'이란 무얼 뜻하는 걸까. 그건 이미 오래 전부터 버라이어티 예능들이 해왔던 소재나 웃음의 방식들을 그대로 차용하겠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퇴행'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이러한 전략이 차라리 괜찮게 여겨지는 건, 정반대로 여기저기 신개념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전혀 새롭지 않게 느껴질 때의 실망감을 적어도 이 '솔직한 접근'이 상쇄시켜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홍김동전'을 보는 시청자들은 아예 대놓고 이 프로그램이 특별한 의미보다는 재미에 맞춰져 있고,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이미 과거에 했었던 소재들도 기꺼이 가져와 풀어보겠다는 그 자세에 공감한다. 그래서 그저 대단한 걸 기대하지 않지만, 잠시 한 시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원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이 프로그램은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물론 이 '구개념'은 버라이어티 예능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던 젊은 세대들에게는 거꾸로 새로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지금의 TV 예능 프로그램들은 리얼리티쇼에 맞춰져 있고 웃음보다는 다른 재미에 더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생겼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유튜브 같은 채널에서의 웃음에 맞춰진 코너들을 찾아본다. '구개념'을 내세워 오롯이 웃음에 집중하는 이 프로그램이 젊은 세대들에게도 어필한다는 뜻이다. 레거시 미디어인 KBS에서는 1%대 시청률을 내고 있지만 웨이브 같은 OTT에서는 늘 많이 본 콘텐츠 상위 순위에 올라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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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홍김동전' 스틸컷.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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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홍김동전' 스틸컷. KBS 제공

◆분장쇼, 캐릭터쇼, 상황극 등 다양

'홍김동전'은 '홍길동전'이 떠오르는 제목이고 포스터에도 홍길동이 떠오르는 의상을 입은 출연진들이 등장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애초 홍진경과 김숙을 중심으로 세워 놓고 갖가지 게임이나 미션을 치르는데 거기에 동전 던지기 같은 운을 가르는 요소를 넣은 게 바로 '홍김동전'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이 제목의 의미는 홍진경과 김숙이 동전을 던져 하는 버라이어티 예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버라이어티 예능이 그러하듯이 그 본래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모해간다. 애초 홍진경과 김숙이 중심을 잡고 여기에 조세호, 주우재, 장우영이 함께 하면서 만들어가는 티키타카는 물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둘 만을 중심으로 세우지고 또 그렇다고 동전에 집착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대신 매 회 그간의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이 해왔던 여러 미션들을 하나하나 이들 출연자들이 해나가면서 캐릭터를 강화해가는 그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매회 그 날의 콘셉트에 맞춰 출연자들이 입고 오는 '드레스 코드'는 '홍김동전'의 시그니처가 된 분장쇼의 묘미를 살려낸다. 홍진경은 이 드레스 코드를 통해 등장부터 웃음을 주는 다양한 분장으로 화제가 되었다. 홍진경과 김숙 그리고 조세호가 연식이 있는 예능인들의 익숙한 리액션들로 웃음을 준다면, 최근 예능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주우재와 이 예능프로그램으로 '돌아이' 캐릭터를 가지면서 주목받고 있는 장우영은 젊은 세대다운 요즘의 리액션으로 구세대들과 각을 이루며 웃음을 준다. 예를 들어 이번 '스카우트 특집'의 공포 체험 미션에서도 모두가 벌벌 떨 때 주우재는 귀신과 같이 대화도 나누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하는 식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줘 귀신들도 얼떨떨해하는 색다른 광경을 만들기도 했다.

어떤 분장을 하고 나오느냐부터 서로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는 출연자들은 역시 버라이어티 예능의 그 익숙한 방식 그대로 캐릭터쇼가 주는 웃음을 만들고,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상황극이나 게임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요소들은 차치하고라도 오롯이 웃음의 효능감을 얻고자하는 시청자들이라면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1%대 시청률에 머물러 있지만 어느새 1주년을 넘겼고, 캐릭터 개개인에 대한 팬덤도 만들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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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홍김동전' 스틸컷.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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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홍김동전' 스틸컷. KBS 제공

◆레거시 미디어의 선택 '구개념'

사실 옛날 방식의 콘텐츠 소비를 하는 분들이라면 시청률 1%에 더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레거시 미디어에서 OTT로 콘텐츠 소비의 주력 미디어가 바뀌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청률 지표는 과거만큼 중요한 수치는 아니다. 시청률 지표라는 것이 결국 멀티미디어 방식의 콘텐츠 소비(모두가 함께 보는 콘텐츠라는 개념으로)에 맞춰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OTT는 저마다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해 원하는 시간대에 보는 소비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시청률과는 무관하다. 또 모두가 함께 보는 콘텐츠 같은 레거시 미디어의 개념으로는 취향으로 선택하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OTT의 콘텐츠들은 더더욱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시청자들에게 맞춰지는 경향을 띤다.

그렇다면 레거시 미디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움과 트렌드를 추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예능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소비자의 변화에 맞춰 특정 취향에 맞추자니 시청률이 낮을 수밖에 없고, 또 시청률에 맞추자니 두루뭉술한 콘텐츠가 나와 트렌드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홍김동전'이 '구개념'을 선택한 건, 아예 대놓고 레거시 미디어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버라이어티 전통을 가져오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웃음에만 맞춰진 취향을 가진 이들을 겨냥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예상대로 시청률은 낮다. 하지만 이 취향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홍김동전'은 재밌다는 입소문이 나게 됐고, 웨이브 같은 OTT에서는 화제가 됐다. 물론 무엇이 정답이라 말할 수 없지만, 레거시 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바뀌고 있는 미디어 환경과 그로 인해 달라진 예능 소비 방식 속에서 '홍김동전'은 '구개념'이라는 하나의 선택을 함으로써 시청률은 다소 떨어져도 정확한 취향을 건드리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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