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외로운 늑대’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끔찍하고 충격적이다. 서울 신림역·분당 서현역 무차별 흉기 난동은 시대의 비극이다.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허용됐다면, 더 처참했을 것이다. 경찰은 사상 첫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다.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와 장갑차가 도심에 배치됐다. 불심검문도 한다. 사태가 엄중하나, 불편해하는 시민들도 많다.

'묻지마 범죄'가 흉폭해지고, 빈발하고 있다. 인파 밀집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흉기 난동은 극한 공포이다. 신림역·서현역 사건은 묻지마 범죄로 불린다. 경찰 공식 용어는 '이상동기 범죄'이다. 범행 동기를 묻지 말라는 게 묻지마 범죄이다. 묻지 말라는데, 묻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생명을 지키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묻지마 범죄의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고립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다. 정신질환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신림역 사건 피의자를 '외로운 늑대'로 규정했다. 외로운 늑대는 1996년 다케스탄공화국을 공격한 체첸 반군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후 '자생적 테러리스트'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외로운 늑대는 테러 단체보다 더 위협적이다. 미국에선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2010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외로운 늑대가 미국을 위협하는 최대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법무부는 CIA 경고에 따라 외로운 늑대 테러 124건을 연구해 대책을 마련했다. 덕분에 수십 건의 테러를 막았다.

전문가들은 신림역·서현역 사건의 범인이 영미권의 '외로운 늑대형'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들은 현실의 불만을 사회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신림역 사건 피의자는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일본에선 묻지마 범죄를 '도리마(通り魔·거리의 악마) 범죄'라고 부른다. 일본은 20년간 도리마 범죄를 연구했다. 사건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사회적 고립'이 범죄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일본 정부는 2021년 고독·고립 부서를 설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찰은 지난해 '이상동기 범죄'의 통계 수집과 분석에 나섰다. 외로운 늑대는 사회병리의 결과물이다. 극심한 양극화와 경기 침체, 치열한 경쟁과 차별은 외로운 늑대의 온상이다. 사형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근원(根源)에서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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