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교육학에서 교육을 정의하라고 하면 그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최근의 두드러진 경향은 교육이 시혜(施惠)에서 서비스(service)로 의미가 확장되고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겠지만 권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지식이 대두하고 정보가 공평하게 나눠지다 보니 생긴 변화가 아닐까 한다.
전국의 모든 사범대생과 교대생은 교육에 대해 이렇게 배웠고, 아무 생각이 없이 받아들였다. 사회의 흐름이 그러하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거대한 물결 아래 우리는 교사가 됐고 학생들을 그럴싸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동영상 제작도 배우고, 마술도 배우고, 수행평가 녹음 파일을 300개 만들어 채점하기도 하고, 출제 오류로 경고장도 받는 등 그럴싸한 교사로 살아가기 위해 애를 썼다.
◆교육의 무료 서비스화, '호구'로 전락한 학교
그런데 이 시대의 흐름을 고품격 무료 서비스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좋게 말해서 무료 서비스고,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쉬운 말로 '호구'라고 일컫는 상대가 바로 학교가 됐다. 학교와 교육청에 무언가를 요구하면 자신들의 요구대로 개선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정보공개를 600건을 청구해도 학교는 받아줄 수밖에 없다. 교사와 행정실장과 장학사와 장학관을 모두 검찰청과 법원으로 보내었지만 교육청은 받아줄 수밖에 없다. 고품격 무료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비스를 이용하는 분들은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뛰어나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경향성도 있어서 자신의 행동을 의미 있는 승리로 여긴다. 상대가 교육기관이고 자신들은 그 상대를 이겼기 때문이다.
전국의 많은 교사들은 고품격 무료 서비스의 대상이 됐다. 이것은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 조직 전체, 아니 사회 전체에 퍼진 흐름으로 보인다. 아무리 친절히 응대해도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민원을 제기해버리면 모든 수고가 허사가 돼버린다. 허사 뿐만이 아니라 법적 대응도 준비해야 한다. 업무를 대신해주는 사람은 없다. 도와줄 수도 없다. 이런 흐름을 우리는 모두 감지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의 최대 희망은 고등학교로 이동하는 것이다. 학생과 감정적인 겨루기를 할 필요가 없고 학교가 너무나도 쾌적하다는 목격자의 달콤한 속삭임은 내신서를 쓰는 그 순간까지 마음을 흔든다. 고등학생들은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과 교사의 직업적 인격 및 태도에 대해 적응이 된 상태이며, 학부모도 교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일일이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없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얼마 전까지 있었다. 출제 민원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능 감독 하고 나면 고발당하기 전지는 말이다. 선생님이 근무하는 현장에서 흉기로 찔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교단을 덮친 '우리애'병… '우리'의 아이로 크려면 멈춰야
학교 업무 차 인근 초등학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선생님들을 만나 보면, 그들은 대개 지쳐있었다. 중학교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초등학교 교사는 단독 수행하는 업무가 많다. 하루 종일 같은 아이들을 혼자 지켜보고, 교과 전담이 있어도 결국 대부분의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는 담임교사의 몫이다. 학부모는 나날이 똑똑해지고 날카로워지는데, 그들이 개개인으로 요구하는 사항도 넘쳐난다. 한때는 사범대보다 교대가 더 인정받았고, 아직 학생들이 어리기 때문에 중학교 교사들은 초등학교 교사를 부러워하는 면도 없지 않았다.
이제는 중2병보다 더 무서운 '우리애'병이 교단을 덮쳤다. '우리애'가 원한다면 탕수육을 '찍먹'(찍어 먹기)하게 해줘야지 왜 '부먹'(부어 먹기)을 해줬느냐, '우리애' 응가는 닦아줘야 할 것 아니냐는 민원의 내용이 중학교에 들려오면서 누가 누구를 학대하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이 탄식은 거대한 물결이 돼 광화문을 뒤덮었지만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더 바쁘고 거대한 뉴스가 많기 때문인 걸까.
서비스의 의미를 무료라고 착각하는 시대. 무료라고 하면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 시대. 그것이 똑똑함인 줄 아는 시대.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나랏돈으로 공짜로 학교 다니는 게 아니다. 그 나랏돈에는 우리의 세금, 우리의 정성, 우리의 마음, 우리의 미래가 담겨 있다. 교사의 교육활동에는 돈으로 치환이 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의 보석 같은 미래가 연결돼 있다. '우리애'가 그리 소중해서 변호사를 선임해 교사를 공격하고 싶으면, 정말 '우리'의 애가 될 수 있도록 부모의 정성으로 가정에서 변호사처럼 타이르고 기르시라.
'믿어요, 함께해요, 우리학교'라는 대구시교육청의 슬로건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천만금을 치러도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고뇌가 담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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