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스위밍꿀 펴냄

김화진 작가가 친구 관계 속 마음의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은 신간
김화진 작가가 친구 관계 속 마음의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은 신간 '공룡의 이동경로'를 펴냈다. 사진은 공룡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김화진 지음/ 스위밍꿀 펴냄
김화진 지음/ 스위밍꿀 펴냄

내게 최애 영화, 인생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 배달부 키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만 13세가 된 초보 마녀가 어엿한 마녀가 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 다른 마을에 가서 1년 동안 자립하는 성장 스토리인데,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느냐면 키키의 마음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이 솔직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 키키는 어느 날 예쁜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파티를 즐기는 또래 친구를 부러워하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는데 이때 키키의 얼굴에 드러나는 어떤 슬픔이 깃든 표정은 희한하게도 위로로 다가왔다. 내 마음 속 감정을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스스로의 감정에 잘 다가가는' 키키는 내게 또 다른 배움을 줬다.

이 영화를 봤던 게 2019년이었으니 3년 전부터 기자는 내 마음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기 태평양 바다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대인배가 되고 싶었지만 관찰을 시작한 후부턴 '아…, 왜 이렇게 못나고 속 좁은 마음만 가득하지' 싶은 생각의 연속이었다. 어엿한 성인이지만 여전히 인간관계 속 작은 일에도 섭섭함과 외로움, 미움, 공허함, 짜증이 수시로 뒤섞였다.

처음에는 이런 마음을 감추고 싶어 부단히도 애썼다. 외면이었다. 하지만 점차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그래도 괜찮다'는 책의, 친구의, 지인들의 위로 덕분이었다. 그리고 제3자 마냥 한발치 떨어진 곳에서 마음을 살펴봤다. 대단한 분석은 없었다. '이럴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하는 딱 그 정도였다. 못난 감정에서 더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영상과 영화를 보며 스스로 달래기에 들어갔고 그러다보면 다음날 아주 말끔히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마음을 알고 인정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래도 괜찮다'는 위로를 줬던 책은 김화진 작가의 첫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다. 못생긴 마음들의 이야기라 읽는 내내 뜨끔함의 연속이었는데 사람을 향해 절로 일어나는 못나고 이지러진 모양의 마음이더라도 회피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심심찮은 위로를 받았다.

기자처럼 마음 탐구에 열성인 이들은 김화진 작가의 신간 소식이 더욱 반갑겠다. 이번에도 김 작가는 마음의 이야기를 담았다. 공룡의 이동 경로. 친구 관계 속 마음의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다섯 편의 이야기다. 친구관계란 게 그렇다. 이유도 모른 채 가까워지다 한순간 소원해진다. 관계가 멀어질 때 만큼 마음의 움직임이 낯설고도 슬프고, 또 아쉽게 느껴질 때가 또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은 네 명의 친구들 주희, 솔아, 지원, 현우다. 5월인데도 열대야처럼 무더웠던 어느 봄밤 이들은 우연히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모임을 결성한다. 모임 안에서 이들은 특별히 누군가와 더 거리를 좁힌다. 들여다보고 싶고 반대로 꺼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면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무언가에 부딪혀 아파하고 지레 움츠러드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뿐이랴. 제멋대로 마음을 들이받고 찌르는 순간까지도 온다. 상처받을 뿐만 아니라 상처주는 마음까지도 고스란히 경험한다. 아프고 싶지 않아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김 작가는 딱딱해지지 말고 생생하게 삶 쪽으로 나가자고 말한다. 삶 쪽으로 나가는 방법은 이런 마음을 묵묵히 보는 것. 내 것이지만 좀처럼 내 것처럼 되지 않는, 살아 움직이는 마음의 아름다운 유영을 즐기자는 것이다.

'삶을 편집할 순 없어. 묵묵히 봐야 해.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 아프지만'. 22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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