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표현과 창조적 자유를 향한 예술가의 실천은 형상의 모방이 아니라 형상을 통한 정신의 작용에 있다. 그 중에서 자발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으로 기존의 틀을 벗어나 삶의 실존을 표출한 동시대미술은 새로운 시대정신에 있다. 특히 앵포르멜 즉 비정형미술은 전후미술의 상흔 속에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새로운 비정형미술은 미술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재료와 기법 등 모든 것의 차별화를 추구했다. 이 미술의 정신을 구체화 시킨 사람은 비평가인 타피에(Michel Tapié)를 통해 추상운동으로 확산했다. 이 추상미술에서 중요한 점은 생생한 실존을 통해 시각적인 요소를 사물의 형태와 선과 색의 배열에서 새로운 시대정신까지 탐구했다는 점이다.
미술사의 흐름은 낡고 진부한 시대일수록 다양한 시각적 의미를 제시하는 작가정신에 주목해 왔다. 예술가의 감각은 잠재된 미래의 가치를 품고 현재를 호흡하는 직관과 통찰이라는 시지각적 실존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보고 그리며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시대의 예술가의 활동은 창작의 자율성을 통해 공동체의 내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산파술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내면 그 보이지 않는 곳에 내재된 자의식을 시각화하는 추상미술은 시지각적 호흡이 투영된 실존의 그림자가 아닐까.
서체추상이 가진 산파술은 추상미술에 있어서 언어와 문자의 관계성이 갖는 문답법처럼 시대감성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문자를 통한 서체추상으로 비정형이라는 앵포르멜의 정신을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가는 이응노 화백이다. 그는 질곡의 시대에 해서와 행서, 그리고 초서까지 두루 익혀 서체추상으로 삶의 현실과 예술의 정신을 시각화했다.
당시 물성과 정신성이라는 시각에서 동서양의 미의식을 결합한 고암 이응노의 실험적인 추상미술을 인정한 곳은 프랑스였다. 전서체와 예서체로 전위적인 콜라주 기법을 시도했던 이응노의 서체추상은 폐자재와 수묵을 결합한 서체추상에서부터 전각의 장법으로 예서와 해서풍의 글자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정신성과 조형성의 결합이었다.
그의 서체추상은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가 갖는 의미인 쓰는 글과 보고 읽는 이미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차이 혹은 체화된 것과 체화해 가는 과정에서 그만의 사의가 담겨진다. 그렇기에 이응노의 서체추상, 즉 추상미술은 작가의 미의식이 투영된 몸이자 보고 읽는 마음이 하나 되는 '군상'에서 절정을 이룬다. '군상'에는 마치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품고 용해시켜 하나인 여럿이거나 혹은 여럿인 하나로 승화된 정신과 신체의 종합, 즉 서체추상에 내재된 산파술로 과거와 미래를 품은 현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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