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짜리 연극 무대 올리는 국립극단…관객도 배우도 진 빠져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 재해석 '이 불안한 집'
창단 후 최장시간 작품…"3부에서 오늘날의 의미 보여줄 것"

"배우들은 목이 쉬고, 몸부림치느라 땀도 흘리죠. 보는 관객뿐만 아니라 저도 진이 빠져요."

공연 시간이 5시간인 연극 '이 불안한 집'을 연출한 김정은 11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스튜디오 하나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31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이 불안한 집'은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재해석한 영국 극작가 지니 해리스의 작품이다. 영국에서 2016년 초연됐고,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담회에 앞서 공개된 1부 연습 시간만 2시간. 중간휴식을 포함해 총 5시간에 달하는 공연 시간은 국립극단 창단 이래 무대에 올린 작품 중 가장 긴 것이다. 이 방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가 뭘까.

김 연출은 "개인적으로 강렬한 작업을 만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 불안한 집') 대본을 봤을 때 전율을 느꼈다"며 "그리스 비극 3부작 형식의 작품 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작품인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250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흔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니 해리스가 재해석한 대본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관객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호흡을 가져간다. 헛웃음이 날 정도로 잘 쓰인 작품"이라며 "제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처럼 관객들에게도 선물 같은 작품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부로 구성된 이 극은 원작 자체가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패륜적인 요소들이 많다. 반복되는 복수가 낳는 비극은 공연 내내 이어진다.

1부는 전쟁 승리를 위해 신의 뜻대로 딸 엘렉트라를 죽인 왕 아가멤논과 처절한 슬픔에 오랜 시간 몸부림치다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왕비 클리템네스트라의 이야기를 다룬다.

2부는 엘렉트라가 어머니를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3부는 정신과 의사 오드리에게 상담받는 엘렉트라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5시간 동안 무대에서 열연해야 하는 배우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외워야 하는 대사량이 살인적이지만, 배우들은 극에 흡입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극 중 마이클, 이안, 의사, 코러스 4개 배역을 돌아가며 연기하는 곽은태는 "처음에 작품을 받았는데 대본을 3권 줬다. 백과사전 다음으로 두꺼운 대본을 받았을 때는 부담도 됐지만, 중간에 5분 정도 쉬고 한 번에 다 읽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9월 2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