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기대수명은 인류의 축복인가? 어떤 사람에겐 그렇고, 다른 누구에겐 아닐 수 있다. 행복은 마음의 충만감이다. 그래서 개별적이고 고유하다. 행복은 관념이고, 추상이라고 한다. 행복은 실재이고, 구체이기도 하다. 현실의 행복은 건강, 가족, 친구, 그리고 돈에 좌우된다. 돈은 행복의 물적 토대이다. 황혼이 되면 돈이 더 절실하다. 부모 봉양, 자녀 교육·결혼으로 빈털터리가 된다. 국민연금, 기초연금으론 생활이 어렵다. 가난은 늙음을 부끄럽게 한다.
3년 전 읽은 '임계장 이야기'(조정진 지음)가 생각난다. 60세에 공기업 정규직에서 퇴직한 저자가 겪은 '바닥 노동'을 기록한 책이다. 울분과 설움으로 점철된 노인 노동의 르포르타주였다. 버스회사 배차 관리, 아파트 경비, 청소일을 전전한 그의 삶은 처연했다. 책을 읽는 내내 돌덩이가 마음을 눌러 내렸다. 노인이란 이유의 차별까지 더해졌다. 그는 일터에서 '임계장'으로 불렸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고도 통한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뜻이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문장에 말라 버린 눈물샘이 감응했다.
급속한 고령화 속에 한국의 노인 빈곤은 심각하다.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0.3세)보다 길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나 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가난은 노인을 일터로 내몬다. 해는 서산에 저물었는데,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끝없이 산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용률은 2022년 기준 36.2%이다. 이 또한 OECD 1위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336만5천 명이다. 최근 5년간(2018∼2022년) 연평균 9% 증가했다. 전체 취업자 수의 연평균 증가율(0.9%)보다 10배 높다. 특히 80세 이상 취업자가 엄청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이 16.5%에 이른다. 65∼79세에게 노동시장 참가 이유를 물었더니, 51.7%가 '생활비에 보탬이 되거나 돈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일이 즐거워서'란 응답은 8%였다. '한국에선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말은 그냥 푸념이 아니었다. 임금은 나이에 반비례한다. 연령대별 월평균 임금은 65∼69세 103만 원, 70∼74세 70만 원, 75∼79세 37만 원, 80세 이상 23만 원이다.
행복한 황혼은 모두의 소망이다. 누구나 로맨스 그레이(romance grey),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멋지게 살고 싶다. 하나, 돈이 없다면 헛된 꿈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기엔 현실은 비정하다. 따뜻한 눈빛을 갖기엔 세상은 냉정하다. 많은 노인들이 아픈 몸으로 밥벌이를 이어간다. 땡볕에서 폐지를 줍고, 바닥을 쓴다. 노년의 가난은 홀로 오지 않는다. 몸의 가난, 마음의 가난, 관계의 가난, 생계의 가난이 얽혀서 온다. 가난은 대물림된다. 금수저는 금수저를 낳고, 흙수저는 흙수저를 낳는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식의 미래를 더 걱정한다. 65세 이상 비율은 2070년 46.4%로 높아질 전망이다. 노인 빈곤 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다. 노년의 가난은 청년의 미래다. 미래가 불안하니, 출산과 결혼을 꺼린다. 노인 빈곤을 방치하면 양극화와 계층 갈등이 깊어진다. 나라의 앞날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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