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책임지지 않는 정치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뉴스국 부국장
모현철 뉴스국 부국장

'오징어 게임'(생존 게임)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막을 내렸지만 부실 준비 책임 소재를 놓고 책임 공방이 불붙고 있다. 국민의힘은 잼버리 유치가 2017년 문재인 정부 시절 이뤄진 점과 개최지인 전라북도의 책임론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잼버리 파행이 '윤석열 정부의 무능 때문'이라며 정부가 폭염 사전 대비 등 운영 준비에 미흡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너무나 익숙하고 지겨운 책임 공방이다. 정치권에서 '네 탓' 비난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원 익사 등 여야 정치권은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서로에게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했다. 그 중 화룡점정이 잼버리 파행이다. 외신의 비판 보도로 국격을 실추시키고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여야 간 책임 미루기는 본격적으로 불을 뿜었다.

호우 피해 실종자를 찾다 순직한 채수근 상병 사건 처리를 두고 국방부와 이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장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유족들은 책임 규명이 제대로 이뤄질지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 달 전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책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충북지사, 청주시장 등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중대시민재해 혐의가 최초로 적용될지가 수사의 최대 관심사다. 검찰의 수사 의지와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예전에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스스로 물러나는 고위 공직자들을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엔 보기 힘들다. 법적 책임만 없으면 문제가 없다는 자세다. 공직 사회에서 도의적 책임보다 법적 책임을 더 중시하는 듯해 씁쓸하다.

여당은 '전 정부 탓'에 몰두하고 있다. 책임지지 않고 전 정부에 미루겠다는 태도로 보인다. 수해 책임, '순살 아파트' 사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도 전 정부에 잘못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윤 정부는 문 정부의 실정으로 집권했으니, 이 같은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윤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1년 3개월이나 됐다. 국가적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전 정부 책임론' 카드를 꺼내 드는 건 무책임으로 비칠 수 있다. 납득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되레 '무책임 정권' 이미지만 공고히 할 뿐이다.

야당은 여전히 윤 정부 때리기에만 골몰한다. 지난 5년간 정권을 운영하는 동안 모자람이 없었다는 뻔뻔함이 드러난다. 완벽하게 잘했다면 과연 정권을 잃을 수 있었겠는가. 반성은 찾아볼 수 없고 비난에만 열을 올린다. 잘못은 솔직하게 인정해야 비판의 진정성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여당과 야당의 '네 탓 정치'에 국민의 피로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야의 책임 전가와 '닥공'(닥치고 공격)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좋은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균형감각, 책임감을 꼽았다. 베버는 세 가지 덕목 중 책임감을 가장 강조했다. 정치가란 자신의 결정과 행위가 불러올 결과를 직접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자신의 동기뿐 아니라 결과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무책임 정치'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책임감 있는 정치와 정치가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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