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광복절인가? 건국절인가?

권용근 영남신학대학교 총장

권용근 영남신학대학교 총장
권용근 영남신학대학교 총장

지난 8월 15일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또한 이날은 대한민국이 시작된 건국 7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8월 15일은 광복절이 되기도 하고 건국절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광복절과 건국절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최근 광복회 회장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1919년 3월 1일로 언급해 많은 이로부터 공분을 불러일으켰는데, 광복회장이 합당하지 않은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면 나라의 미래가 심히 염려된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들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나라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성립되기 위해선 국민과 주권, 영토가 있어야 하는데 1919년 당시로서는 우리의 주권을 일본에 빼앗겼기 때문에 국민은 있었지만 주권도 없었고 영토도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500년이나 유지되어 오던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본에 합병되고 나라를 책임졌던 고종도 나라를 자의로 이끌어 갈 수 없었다. 당시 고종이 이야기한 대한제국의 대한과 지금의 대한민국의 대한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대한민국을 조선 말기와 연관 짓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고종의 대한제국은 조선왕조의 연장 선상에 서 있는 나라였고, 1948년에 시작된 대한민국은 남한의 전 국민이 투표로 참여해 세운 자유민주국가인 것이다. 자유 대한민국이 시작하는 데에는 이승만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고 이를 찾기 위한 만세운동이 1919년 3월 1일에 있었고 이날을 기점으로 상해임시정부가 시작됐다. 당시 임시정부의 대표는 이승만이었고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은 첫째 이승만의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둘째 안창호의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 셋째 김원봉의 의열단을 통한 독립운동이 일어나긴 했으나 광복에 대한 여망이 크게 보인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비로소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는 전격적으로 해방이 됐다. 그러나 해방이 되긴 했지만 어떤 나라를 만들지에 대한 의견이 모아지질 않았다. 소련을 배후에 업은 김일성은 한반도를 조선 인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길 원했고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만들길 원했다. 이로 인해 공산주의 세력과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국가 설립을 두고서 힘겨운 싸움을 했다. 이 싸움 후에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선거로 비로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1919년 3월 1일은 나라의 모양을 갖추지 못한 망명정부로서 대한민국이 배태된 날이고 그 후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드디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이루어졌다.

3년간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선거로 지도자를 뽑고 7월 17일에 대한민국 헌법을 공포한 뒤에 비로소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다. 그러므로 배태된 날이 출생일이 아니라 산고의 고통을 거쳐 출생한 날이 비로소 건국일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의 선조들이 광복일에 맞춰 건국일을 정한 것은 깊은 혜안에서 나온 것이므로 8월 15일을 통해 광복절의 기쁨과 건국절의 경축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지를 알고 잘 지켜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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