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영화도시 대구

배주현 문화체육부 기자

배주현 기자
배주현 기자

지난달 동유럽 체코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곳에서 동유럽의 칸 영화제라고 불리는 '제57회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가 열렸는데, 한국 영화가 프록시마 경쟁 부문에서 대상(그랑프리)을 수상했다. 이 소식이 더욱 의미가 깊었던 건 수상 영화가 대구에서 활동하는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작가 '재이'가 신작 출간을 앞두고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며 안정적인 가정을 원하는 남자 친구 '건우'와 겪는 갈등을 그린 '나의 피투성이 연인'. 첫 장편 영화 '수성못'으로 주목을 받은 유지영 감독의 4년 만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와 대구. 두 단어의 조합은 이질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이미 국제영화제 개최 도시로 자리 잡은 다른 시·도가 숱하지만, 대구에서는 좀처럼 영화제를 즐기기 어렵다. 그나마 24년 전통을 지켜 오고 있는 대구단편영화제가 매년 8월마다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영화감독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최근 유지영 감독의 작품뿐만 아니라 권민련 감독의 '사라지는 것들', 김현정 감독의 '유령극', 채지희 감독의 '점핑클럽'이 24일 개막을 앞둔 '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경쟁 부문 본선에 진출했다. 특히 대구 기반의 영화 여러 작품이 한 번에 본선에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무척 이례적이라는 것이 지역 영화계의 반응이다.

이뿐 아니라 김선빈 감독의 '소녀탐정 양수린'과 '수능을 치려면', 김은영 감독의 '더 납작 엎드릴게요', 장주선 감독의 '겨울캠프' 등의 작품도 제주혼듸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서울독립여성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지역 젊은 감독의 명성이 커져 가고 있다.

'영화'에 발을 들이는 이들도 숱하다. 지역에서 유일하게 영화 제작을 배울 수 있는 '대구영화학교'(Daegu Film School)는 2019년 문을 연 이후로 4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 중 절반이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영화 창작 인력과 꾸준한 성과에도 영화산업 성장을 위한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대구단편영화제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영화제임에도 예산은 20여 년간 겨우 1억2천만 원 선에 머물고 있다.

더욱이 올해 예산은 전년도 대비 10%가량 깎였고 영화진흥위원회 공모를 통해 지원받던 국비도 올해는 받지 못하면서 예년에 비해 예산이 크게 줄었다. 이로 인해 영화제 운영 인력도 과거 4, 5명에서 올해는 2명으로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매년 예매율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가 많은 영화제임에도 즐길 거리 부족 등 확장성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또 대구단편영화제와 대구의 영화제 두 축을 이뤘던 대구여성영화제도 운영난으로 지난 5월 중단됐다 최근에야 부활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기보다는 여성영화제 명맥을 이어 나가고자 계명대 여성학연구소가 자발적으로 영화제 개최를 맡았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대구시는 영상산업 육성을 목표로 '영상콘텐츠팀'을 신설했다. 플랫폼의 영향으로 영상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는 시민들이 많은 만큼 지원을 키워 나가겠다는 목표인데, 대구 영화 발전을 위한 토대도 다시 닦아야 할 때다.

23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대구단편영화제부터 관심을 가져 보자. 이곳에서 영화를 즐기는 시민의 얼굴과 작품을 선보이는 감독들의 표정을 읽고 영화 도시 대구로 한 발짝 내디뎌 보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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