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이 대구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경주에 경주 교동이, 전주에 전주 교동이 있다. 멀리 강화도에도 교동이 있다. 경향 각지에 교동이 있다. 교동의 유래는 향교에서 비롯한다. 향교가 문을 연 마을이 대개 교동으로 불린다. 그런 까닭에 교동이 고유명사 같지는 않다.
그런데 지역마다 교동의 존재 방식이 다르다. 대구 교동과 경주 교동, 명칭은 유사하나 존재 방식은 전혀 다르다. 지역 사정 때문에 그렇다. 역설처럼 들리겠으나 대구 교동에 향교가 없다. 본래 대구 향교는 교동 26번지 위치에 창건된다. 태조 7년, 1398년에 창건된 대구 향교는 1932년 일제강점기에 남산당 735번지로 이전한다. 그 사이에 대구 향교는 화재 소실, 재건, 중건, 이전의 역사를 거친다.
대구 교동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변모한다. 대구역 건너편에 양키 시장으로 불리게 된 교동시장이 이 시기에 탄생한다. 미군의 대구 주둔이 양키 시장 탄생의 배경이다. 미군 군수품은 교동시장에서 인기리에 거래된 품목이었다. 그로부터 교동 일대가 대구의 대표적 원도심으로 불릴 정도로 시간이 꽤 흘렀다.
교동시장에서 대구시청에 이르는 골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 골목들은 도심의 미로 같다. 그 미로에 납작만두와 김밥 가게는 물론 컴퓨터 가게, 오디오 가게가 즐비하다. 하나같이 노포다. 그런데 교동 일대 골목과 거리, 노포가 원도심의 눅눅한 이미지를 털고 지역 청년들이 사랑하는 '핫플'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열대야를 무릅쓰고 대구 교동으로 마실 간 일이 있다. 부산 광안리 분위기였다. 과장이 아니다. '힙'한 청년들이 교동 골목과 거리를 걷고 있었다. 가게마다 청년 손님들이 가득했다. 참 보기 좋았다. 이런 가게도 있었다. 상호 간판이 없었다. 그렇지만 가게 내부는 만원이었다. 밖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청년들의 줄이 길었다. 교동 일대에는 신축 건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건물은 높아야 2층 아니면 3층의 구축이다. 내로라하는 브랜드 가게가 입점하지도 않았다. 교동이 어느새 지역 청년들이 창조한 대구 대표 뉴트로 거리로 변모했다.
뉴트로 대구 교동이 오래가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대구의 청년 명소로 진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진심이다. 부디 대구 교동이 재개발 요구를 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특히 각별하다. 더불어 대구 교동이 김광석 골목처럼 임대료 상승과 그에 따른 부진을 겪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문화가 별 게 아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게 문화의 기본이다. 도시재생이 별 게 아니다. 만나고 걷고 모이게 하는 게 도시재생의 기본이다. 청년 정책이 별 게 아니다. 청년들의 즐거운 놀이터를 보호하는 게 청년 정책의 기본이다. 청년 세대들에게는 일자리가 전부가 아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무더위가 꺾이고 있다. 누가 뭐래도 선선한 가을이 오고 있다. 바야흐로 거리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대구 교동으로 더 놀러 가야겠다. 때마침 찢어진 청바지를 샀다. 지난번에는 태국 요리 가게에 들렀으니 이번엔 딴 가게로 갈까 싶다. 대구 교동의 뉴트로 생태계를 응원한다. 교동, 이런 분위기로 계속 가자. 대구 어른들이여, 교동으로 놀러 가세요, 얼른.
문화부 jeb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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