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 르네상스의 서곡을 울리다
그 해 여름 나는 혼자 단테의 생가 앞에 서 있었다. 문득 모르는 사람들 틈에 있고 싶어 훌쩍 떠나온 지 열흘째쯤 되는 날이었고, 막 베키오 다리와 아르노 강을 바라보며 산타 트리니타 다리를 건너온 참이었다. 옛 터에 복원했다는 단테의 생가는 마치 중세 수도승들 거처인 양 소박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운명의 연인 베아트리체와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우연히 만났다는 좀 전의 그 돌다리도 보티첼리가 추정해 그렸다는 그의 얼굴처럼 뚝뚝했다.
피렌체, 그의 고향이었으나 정치적 문제로 추방당하였고 사면되었으나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은 곳. 그 애증이 드러난 것인가, 이곳에서의 단테는 조각, 동상 할 것 없이 모두 표정이 경직되어 있다. 전 재산을 몰수당한 채 떠돈 21년의 유랑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중세의 문을 닫고 르네상스의 서곡을 울리듯 신곡(La divina commedia, 神曲)을 썼다.

그야말로 피를 잉크삼아 자신의 적들과 주류 세력에 대한 반항이었던지 라틴어가 아니라 우리 한글처럼 속어 취급을 받던 토스카나 방언으로 100편의 시, 신곡을 세상을 향해 던졌고 그 반향은 엄청났다. 정세가 바뀐 피렌체 시 당국과 시민들은 이탈리아 문학과 사상의 길을 연 위대한 시인의 귀환을 줄기차게 종용했다. 하지만 단테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1321년 라벤나에서 영면했다.
'이것이 새로운 빛, 새로운 태양이 되리라. 해묵은 태양이 질 때 떠오르게 될 새로운 태양은, 빛을 비추지 않는 해묵은 태양 때문에 그늘과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어 주리라.' 그의 무덤 앞엔 지금도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이 있는데 피렌체에서는 속죄의 의미로 그 기름 값을 지금도 대고 있으며, 지난 2008년엔 700년 전 그 추방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르네상스의 단초가 된 단테의 사후 200여 년 동안 피렌체에는 세계사적으로도 놀라운 천재들이 출현했다. 조토,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도나텔로, 미켈로초, 우첼로, 안젤리코, 마사초, 알베르토, 프란체스카, 고촐리, 피치노, 베로키오,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이렇게 출현한 천재들을 또 조반니, 코시모, 로렌초 3대에 걸친 메디치 가문이 물심양면 지원했다. 진정한 예술, 인문, 과학의 꽃이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짝 피어났다.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냉정과 열정을 모두 요구하는 꽃의 도시 피렌체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은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는다. 메디치 가문의 베키오 궁전과 행정사무건물(Office)이었던 우피치미술관 그리고 로지아 데이 란치(비 오는 날의 집회장소) 회랑이 면한 광장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복제상,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페르세우스, 사비네 여자들 등의 조각상들로 빼곡하게 늘어서 있어 더욱 그렇다. 모두 교과서와 도판으로 본 작품들이다.

인근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산 조반니 세례당, 조토의 종탑, 산 로렌초, 산타 크로체, 팔라초 피티, 보볼리 정원 등이 있다. 말 그대로 눈길 닿는 곳마다 호화롭고 우아한 건축물이오, 중세, 르네상스 예술품들이다. 심지어 벽면과 보도블록조차 역사적 유물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전부 거장들이 그린 것이며, 제단은 물론 대리석 바닥 장식마저 예술 작품이다.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의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 진품이므로 무조건 봐야 하고, 거의 모든 세계 고서들이 총망라되었다는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둥근 계단도 밟아봐야 한다.

피렌체에선 '스탕달 신드롬'(천재적인 예술 작품을 보다가 쓰러질 것 같은 감동에 사무치는 현상)을 느꼈다는 스탕달과 릴케가 공감된다. '훌륭해! 하지만 과잉, 요설(饒舌)'이라 기록했던 누군가의 심정도 이해된다. 여행 터수가 늘어날수록 잔머리 대마왕이 되어가던 나는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관람 순번을 매기기 시작한다.
400만 개의 벽돌로 지었다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는 가장 높은 대성당이라 피렌체 어디에서든 보인다. 두오모 돔은 아직도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금 세공사 브루넬레스키가 철근이나 콘크리트 없이 벽돌로만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을 일별하고 산 조반니 세례당 거대한 천국의 문 앞에 선다. 이 문을 만든 청동 세공사 기베르티와의 경쟁에서 진 브루넬레스키가 절치부심 건축 실력을 쌓아 두오모 돔을 만들었다는 것이니 천재들의 각축이 예술의 근간이란 말이 맞는 듯하다.

◆생각하게 하는 미술관, 우피치(Uffizi)
우피치 미술관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관이다. 부침(浮沈)을 거듭하던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가문이 소장한 미술품 전체를 피렌체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시에 기부해 1765년 개관했다. ㄷ자 건물인 미술관 외벽에는 토스카나 출신 주요 인물 조각상을 감실에 세워둔 것만 봐도 훌륭한 관람이 될 정도다. 회화는 3층, 소묘와 판화 2층, 1층은 고문서로 분류된 총 45개의 방, 2500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토의 '장엄한 성모'는 주요 인물은 크게, 부수 인물은 작게 그렸다는 초기 원근법 미술사 이론을 실감나게 한다. 이제 브루넬레스키와 함께 발견한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를 거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기 원근법으로 완성되어 갈 터. 이 원근법의 발견과 변화 과정을 우피치 미술관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도 그 범주의 작품인데 내겐 마티스의 색종이 작품이 우첼로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생각된다.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화'는 도판에서 볼 때처럼 실제 작품도 왠지 코믹해 절로 웃음이 난다. 옆모습으로 마주 보고 있는 공작의 코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역시 대중적 인기 작품이라 금방 사람들이 그림을 에워싼다. 공작부인의 분을 칠한 듯 하얀 얼굴빛은 안타깝게도 죽은 후의 모습을 그린 것.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비너스의 탄생'은 절로 감탄을 흘리게 한다. 이 황홀한 색채라니! 이야말로 예술이 주는 기쁨 아니겠는가. 보티첼리는 후에 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어 자신의 그림들을 불경하다며 태워버렸다는데 이 그림들은 메디치가에 소장되어 남았다니 천만다행이다.

23세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태고지', '예수의 세례' '인체 해부학 노트' 미켈란젤로의 완벽한 회화 작품 '돈도 도니, 성 가족',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카라바조의 '메두사', '바쿠스' 실제 작품을 보며 빅뱅처럼 폭발한 천재들의 발현과 르네상스를 다시 생각해 본다. 전지전능한 신(神)이 아니라 드디어 의심하는 인간, 수치심으로 절망하는 인간, 실존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을 그려넣고 조각하기 시작한 최초의 예술가들, 그들이 그때 피렌체에 있었다.

박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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