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문화예술회관과 유원지가 모인 전북 남원 춘향테마파크 인근에는 '함파우마을'이 있다. 함파우마을의 함파(含波)는 '물결을 머금고 있다'는 뜻. 남원 시내에서 이 함파우마을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위치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역시 물결을 머금은 공간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느껴진다. 미술관 입구까지는 풀 대신 물이 채워진 계단식 정원 사이로 난 길을 지나야하는데,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포토 스팟'으로 인기다. 일렁이는 물결이 흰 건물에 반사돼 외벽 장식과 같은 효과를 연출한다.
2018년 개관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완주 아원고택'으로 유명한 전혜갑 건축가가 디렉팅한 건축물이다. 남원 출신의 김병종 작가가 대표작 400여 점 등을 기증하며 컬렉션의 기반을 갖췄고, 현재 김 작가의 작품을 수집·연구하고 지역 미술을 진흥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관을 지을 당시 김 작가는 미술관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잘 녹아들면서, 납작 엎드린 듯한 모양새의 '겸손한 미술관'이 되길 바랐다고 전해진다.
그의 바람처럼 미술관은 고요하게 사색할 수 있는 분위기다. 갤러리 곳곳에 '숲멍'할 수 있는 통창이 있고, 1층에는 2천여 권의 미술·문학·인문학 관련 도서가 비치된 북카페도 있다. 미술관에서 바라보는 소나무숲과 멀리 보이는 지리산 능선, 하늘의 조화가 무척 아름답다.
현재 진행 중인 개관 5주년 특별전 '김병종 40년, 붓은 잠들지 않는다'는 김 작가의 화업 40년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다. 시리즈 전시의 마지막인 4부 '길 위에서-남미부터 북아프리카까지'에서는 그가 남미와 북아프리카, 뉴욕, 파리를 여행하며 기록한 그림과 글, 시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학 시절 동아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과 동시에 전국대학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등 일찍부터 글과 그림 모두 재능을 보였던 김 작가의 매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다.
갤러리1에서는 국내 일간지에 2년여 간 연재한 '화첩기행' 남미(라틴아메리카)편, 북아프리카편속 삽화 원작과 평소 공개되지 않았던 원화를 대거 만나볼 수 있다. 푸른빛의 바다와 하얀 사원, 지붕 위를 헤엄치는 새 등 마치 동화 같은 작품들이 작가와 함께 여행을 떠난 듯한 설렘을 가져다준다. 전시실에 울려퍼지는 경쾌하고 시원한 남미풍의 음악은 작곡가 이릴리가 그의 작품을 보고 작곡한 것.
2층의 갤러리2는 예술가의 낭만과 고민이 짙게 배인 색다른 느낌의 작품으로 채워져있다. "다녀도 다녀도 파리만큼은 아직 배고프다. 돌아서면 다시 그곳이 그립다. 덧없이 흘러가는 인상 속에서 그나마 머물러 서서 바라볼 수 있는, 그 무엇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예술', 혹은 '예술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 말이다." 이곳의 작품들은 작가의 글과 함께 배치돼있어 작가의 생각을 짐작하며 더욱 깊게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3은 '김 작가의 방'으로 꾸며졌다. 그가 쓰는 미술도구를 비롯해 그가 쓴 글들의 초고, 손으로 쓴 작가노트 등을 볼 수 있다.
유치석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관장은 "미술관 앞 교육체험동이 오는 11월 준공될 예정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미술체험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며 "내년 초에는 소나무숲에 생태놀이터도 오픈을 앞두고 있다. 매년 관람객 8만명 가량이 찾고있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10월 29일까지 이어지고, 11월부터는 기획전시 '예술편력전-조영남'이 열릴 예정이다. 인근 광한루원과 남원향토박물관, 함파우소리체험관 등도 들러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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