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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14> 멀리 서울을 바라보며

미술사 연구자

강세황(1713-1791),
강세황(1713-1791), '남산여삼각산도(南山與三角山圖)', 1784년(72세), 종이에 담채, 20.7×43㎝, 개인

강세황의 실경산수 '남산여삼각산도'는 제화시가 그의 문집 '표암유고'에 '옥후북조도(屋後北眺圖)'로 수록돼있어 집 뒤의 높은 곳에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며 그렸음을 알려준다. 인장은 자(字)를 새긴 '광지(光之)'이고 제화는 다음과 같다.

교거숙이구(郊居倐已久)/ 교외에 산 지 이미 오래건만

상유경성련(尙有京城戀)/ 여전히 도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네

남산여삼각(南山與三角)/ 남산과 삼각산을

시등옥후견(時登屋後見)/ 때로 집 뒤로 올라가 바라보네

표옹(豹翁)/ 표옹(강세황)

그가 바라본 북쪽은 서울이고 남산과 삼각산이 함께 보인다고 한 교외는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용산이다. 강세황은 용산에 살던 72세 때 "하루 종일 일이 없다가 우연히 부채 16자루를 얻어 정자와 동산의 경치, 꽃과 풀, 새와 벌레를 되는 데로 그리고 시를 지어 화제로 썼다"고 했다.

누군가 한꺼번에 많은 부채를 가져와 그림을 부탁하자 강세황은 만년의 노숙한 실력으로 주변의 경치를 비롯해 각종 그림을 그린 다음 어울리는 제화시를 지어 써 넣었다. 16점의 부채그림에 썼던 16수의 시는 문집에 모두 실려 있으나 그림은 '남산여삼각산도'를 포함해 3점이 알려져 있다. 강세황 같은 대가도 16점 중 3점밖에 보존되지 못했다. 많은 명작 선면화가 부채와 함께 소모돼 사라졌다.

앞쪽의 초가집과 기와집, 담장과 나무 등은 몇 번의 붓질로 형태의 핵심을 장악해 능숙하게 요약했다. 그 뒤로 논밭과 언덕이 넓게 펼쳐진 사이사이로 집들이 보이고 멀리 남산과 삼각산이 솟아있다. 왼쪽에는 한양도성으로 향하는 길을 표시해 놓았다.

남산은 푸른 바림을 올려놓은 위에 가로로 점을 찍어 산세를 나타냈고 그 뒤의 삼각산은 뾰족한 바위봉우리를 윤곽선으로 강조했다. 멀리 있는 산을 그릴 때 으레 따라오기 마련인 안개나 구름이 없고, 집과 나무는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려 근대원소(近大遠小)가 직설적이다.

'남산여삼각산도'는 현재 전하고 있는 강세황의 그림 중에서 비슷한 예가 없는 화풍이다. 오래전에 떠난 서울을 그리워하는 상념에 잠겨 눈앞의 경치를 그대로 옮기는 사생에 골몰한 현장성과 즉흥성으로 인해 상투적인 그림 버릇이 작동하지 않았다. 부채를 들고 물감을 옆에 놓고 쓱쓱 스케치하듯 그렸을 것이다. 일흔이 넘은 만년의 필치인데 마치 아동화 같고 푸른색과 황색의 색조가 맑다.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맡겨 무심하게 그린 직관(直觀)의 사생화가 주는 생생함과 당당함에 압도되는 부채그림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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