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는 게 아쉬운 요즘이다.
20대 때 누군가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단연 봄이었다. 그것도 벚꽃이 환하게 핀, 온 세상이 분홍빛을 물든 따뜻한 봄날 말이다. 20대 후반으로 흘러갈수록… 나름의 삶의 풍파를 겪고 난 후부턴 최애 계절은 살짝 밀려났다.
핑크빛 세상 대신 초록빛 세상이 더 좋아졌고, 벚꽃이라는 찰나의 순간 뒤 오는 초록을 거머쥔 세상을 늘 기다렸다. 시기상 5월 초부터겠다. 초록색으로 물든 가로수와 5월의 옅은 하늘색 가득한 파란 하늘의 궁합은 단연코 최고인데, 그때 나의 기분도 최고조에 이른다.
여전히 5월을 사랑하지만 올해부터는 또 한 번 최애 계절 변화가 시작됐다.
여름이다. 여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름은 늘 피하고 싶은 계절이었다. 추위보단 더위를 많이 타는 몸이라 바깥활동 5분도 안 돼 몸 구석구석 터져나오는 땀이 무척 싫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올해부터는 이 더위를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서두에 말했듯 유난히 빨리 흘러가는 듯한 요즘이기에, 계절을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게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자는 남은 8월의 더위를 더욱 알차게 즐기기로 했다.
당장 지난 주만해도 친구들과 떠난 포항 해수욕장에 얇은 끈 민소매 하나만 걸치고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튜브, 구명조끼 없이 헤엄친 여름 바다에서 자유를 만끽했고 모래사장 위 펼쳐둔 돗자리에서 아주 강한 햇볕을 받으며 이리저리 몸을 구웠다. 자두와 수박을 좋아해 올해는 엄마를 졸라 유난히도 이 두 가지의 여름 제철과일을 마음껏 먹었다.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시간이 흐른 뒤 2023년의 여름을 되돌아봤을 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올해 여름의 작은 기쁨들이다. 따지고 보면 거창할 거 없는 여름의 조각들이지만 마음만은 풍성하게 기자의 인생을 채워갔다.
계절과 관련된 추억은 늘 잔상이 오래 남는다. 기자가 올해의 여름을 기억하고자 했듯이 누군가는 어떤 계절을 떠올렸을 때 어린 시절 부모와의 추억을, 연인과의 추억을 떠올릴테다. 그리고 여기,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이 하나 있다. 2022 프랑스 아동문학상 '마녀상' 수상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다.
글과 그림, 문자와 소리, 일상과 상상의 관계를 탐험하며 이야기를 짓는 그림책작가 델핀 페레의 작품으로 소설 '눈부신 안부'의 백수린 작가가 번역을 맡았다. 엄마와 함께하는 아이의 여름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델핀 페레만의 아름다운 여름 풍경을 탄생시켰다.
이야기는 엄마의 어린 시절 기억이 서려 있는 시골집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지금은 곁에 없는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골집에서 아이는 찬장에 놓인 오래된 사탕을 꺼내 먹고 곤충을 관찰하고 따뜻한 모닥불을 쬔다. 책에는 아이가 혼자 보내는 시간과 타인과 어울리는 시간이 골고루 등장하는데 아이가 타인과 나누는 대화, 기분 좋게 내리쬐는 햇살과 바람, 빗소리, 웃음소리가 그 여름의 싱그럽고 풍성한 감각을 전달한다.
이렇게 아이는 여름에 발견한 작은 기쁨과 성장의 순간을 함께하면서 훌쩍 자란다. 수채화로 펼쳐지는 풍경과 흑백 드로잉 그림을 번갈아 가면서 풍성하고 아름다운 시간의 결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저마다의 갖고 있는 여름 기억을 꺼내 볼 수 있다.
축축한 풀밭 위에 눕기, 춤추기, 커다란 풍뎅이 찾기, 열매따기…아이가 여름에 발견한 작은 기쁨들, 그리고 고요하고 충만하게 아이 인생을 채운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아이가 엄마에게 고백하는 깊은 여운이 담긴 말로 끝난다.
"엄마, 그거 알아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어요" 128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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