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민하였다 젊은이여, 영광은 금방 사라지고
더 이상 벌판에 머무르지 않네
월계수는 일찍 자라지만,
장미보다 빨리 시드는구나
-「젊어서 죽은 운동선수에게」 중, A. E 하우스먼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주인공 카렌(메릴 스트립)은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죽은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의 장례식에서 이 시를 읽는다. 인생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죽은 연인을 슬퍼하며.
데니스는 문학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젊은이였다. 데니스와 카렌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다. 카렌의 집에 초대를 받은 데니스와 그의 친구는 카렌의 스토리텔링에 귀를 기울인다. 데니스는 카렌의 집을 나서면서 그녀에게 만년필을 선물한다, 글을 써보라는 당부와 함께.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는 모차르트의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모차르트와 아프리카는 문명과 원시의 차이만큼이나 엄청난 거리가 느껴진다. 하지만 눈부신 빛과 풋풋한 생명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데니스가 카렌을 경비행기에 태우고 아프리카 상공을 나는 장면을 기억한다. 여기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2악장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지상의 것들을 훌훌 털고 초원 위로 날아오르는 연인들. 하강하는 음계를 따라 내려가는 클라리넷의 느린 선율은 마치 경비행기의 안정된 항로처럼 부드럽다. 고요하고 섬세한 선율은 힘차게 날아오르는 아프리카 홍학 떼처럼 활짝 피어난다. A장조 2악장은 모차르트 고유의 슬픔이 승화된 경지를 보여준다. 목관악기가 토해내는 아름다운 슬픔은 이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지프를 몰고 떠난 여행지에서 데니스는 축음기로 <디베르티멘토 D장조> No.2 K.136을 들려준다. 쏟아지는 현악기의 선율들, 비비 무리들이 털을 곧추세우며 주뼛주뼛 뒤로 물러선다. 살롱에서나 어울릴법한 음악이 아프리카 야생에서도 이렇게 신선한 빛을 발할 줄이야. 사람들의 소곤거림과 잡담 대신 초원에는 햇살이 수런거리고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 순간이 영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연인들은 마주보며 웃고 있다.
야영지의 밤에는 <피아노 소나타 K.331> 1악장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음악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이 선율에 실려 춤을 추며 둘은 서로에게로 깊이 빠져들어가 진실한 대화를 나눈다. 데니스는 카렌을 사랑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카렌이 파산하고 아프리카를 떠나게 되었을 때 그녀를 잡지 않는다. 몸바사까지 바래다주겠다고 약속한 그는 경비행기 사고로 죽어서 돌아온다.
모차르트 음악의 밝음과 행복 뒤에는 존재의 비극성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일찍이 잘츠부르크의 궁정악단을 떠나 경제적인 궁핍을 감수했으며 삶의 어두운 지점들과 부단히 대결했던 그는 음악에도 깊은 음영과 파토스를 남긴다.
카렌은 약혼자와 남편, 데니스, 농장까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덴마크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세련되고 절제된 문장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어쩌면 데니스가 죽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완성될 수 있었다. 아름다움, 젊음, 사랑 같은 것들은 모두 순간적이다. 이것이 영원하다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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