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와 마르크 블로크
조선총독부 역사관, 즉 일제를 추종하는 식민사학을 점잖은 말로 '고'이라고 부른다. 국내 모든 대학교의 사학과를 장악해서 대학 강단에서 식민사학을 전파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여러 사안을 두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진영싸움을 하지만 유독 역사분야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이 식민사학 추종 일색이다.
광복된 지 80여 년이 되어가는 나라에서 아직도 일제의 침략도구인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현상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프랑스 역사학계가 아직도 나치 역사관을 옹호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리 가정하려고 해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에서는 이것이 가능한가?
한국에 단재 신채호(1880~1936)라는 역사학자가 있었다면 나치 점령기 때 프랑스에는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1886~1944)라는 역사학자가 있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 등을 쓴 고대사학자라면 마르크 블로크는 《봉건사회》 등을 쓴 고대사학자였다.
또한 신채호가 백암 박은식 등과 함께 기존의 중화사대주의 역사관을 뿌리째 흔든 민족주체사관으로 한국사 인식의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르크 블로크는 1929년 르 페브르와(Le Fevre) 공통으로 《사회경제사연보》를 창간해서 유럽 역사학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던 아날학파의 기초를 이룩했다.
신채호가 항일전선에 나섰다가 1928년 일제에 체포되어 요동반도 끝자락 여순(旅順)감옥에서 1936년 56세의 나이로 순국했다면 마르크 블로크는 리옹에서 레지스탕스로 나치와 싸우다가 나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5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마르크 블로크는 현재 프랑스 역사학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서 존경을 받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신채호는 옛 정권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단 단장이었던 K모 교수가 공개 학술대회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고,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다"라고 망언했을 정도로 한국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저주의 대상이다.
한국의 무수한 대학 사학과에서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에 대해서 단 한 시간도 가르치는 곳은 없다. 프랑스 역사학계에서 나치 역사관을 옹호하면 바로 매장되겠지만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일제 식민사학을 옹호해야 논문도 통과되고 교수, 연구원도 된다.
◆따로국밥 역사학의 가야=임나설
그런데 남한 강단사학의 고민이 있었다. 광복 후에도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려니 자신들은 식민사학자가 아니라는 분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황국사관(皇國史觀)'이란 이름표를 '실증사관'으로 바꿔달았다.
그리고 '서론 따로' '본론 따로'의 '따로국밥 역사학'을 창안했다. 또한 역사학은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라는 논리로 역사를 자기들만의 학문으로 독점했다. 이 모두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희한한 논리들이다. 남한 강단사학은 한마디로 제국주의 역사학의 사생아이다.
이중 '따로국밥 역사학'이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 강단사학계는 서론과 총론에서는 늘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고 자찬(自讚)한다. 그러나 본론에 들어가면 그 모순점이 바로 드러난다.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은 '가야가 임나'라는 '임나 가야설'인데, 서론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고 자찬해놓고 본론에서는 늘 '가야가 임나'라 횡설수설한다. 가야사 전공이라는 홍익대 명예교수 김태식의 말을 들어보자.
"임나일본부설은 일제시기 일본이 우리에게 강요한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통해 한국고대사를 왜곡시키고 한국인에게 열등감을 조장했다. 사실 그들이 '임나'라고 부르는 곳은 고대 한반도의 가야 지역에 해당한다."(역사비평편집위원회,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쟁점》, 역사비평사 2008)
전문역사학이 아니라 고등학교 논술 수준에서도 이 문장을 분석해보면 의미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을 함께 사용하는 형용모순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김태식은 임나일본부설을 "일제 식민사관의 대표"로서 "한국고대사를 왜곡시키고 한국인에게 열등감을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그다음 문장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조작으로서 가야는 임나가 아니다"가 되어야 하는데, "사실 그들이 '임나'라고 부르는 곳은 고대 한반도의 가야 지역에 해당한다"라면서 '임나=가야설'을 주창한다. 앞 문장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주창하는 것이다. 이는 비유하면 "㉮라는 사람은 연쇄살인마이다. 사실 그는 성인군자이다"와 같은 문장이다. 역사를 조금만 알면 초등학생도 쉽게 그 모순을 알 수 있지만 한국사회는 이런 모순된 논리가 역사학 외피를 쓰고 통해왔다. 이들이 역사학계를 거의 100% 장악했고, 또 서울의 주요 언론, 특히 자칭 진보니 중도니 하는 언론의 문화부 학술담당 기자들이 이들과 한통속이 되어 독자들을 속여 왔기 때문이다.
◆논리가 없는 '임나=가야설'
이 나라 역사학자들은 역사학의 필수인 사료가 없고 논리가 없다. 김태식은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1》에서 이렇게 썼다.
"그러므로 비교적 신빙성이 인정되는 전자의 다수 용례를 중심으로 볼 때, 임나는 6세기의 한반도 남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신라나 백제에 복속되어 있지 않은 소국들의 총칭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요컨대 대가야를 중심으로 파악되는 5~6세기 후기 가야 연맹을, 왜에서는 무슨 이유에선가 임나라는 명칭으로 불렀다."(《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1》)
김태식은 '6세기 경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신라나 백제에 복속되지 않은 소국들의 총칭을 임나'라고 말했다. '경남을 중심으로'라는 말은 경남 이외의 지역까지 포괄하는 말이다. 또한 6세기까지도 신라는 경상도 지역을, 백제는 충청도나 전라도 지역을 자국의 강역으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낭인 야쿠자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이나 일제 패전 후에도 임나일본부설을 주창했던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 간사 출신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은 야마토 왜국의 강역이었던 임나가 경상도는 물론 충청, 전라도 일대까지 모두 장악했다고 우겼다. 그래서 신라는 경주와 그 부근의 작은 지역을 차지한 소국에 불과하고 백제도 공주와 부여 일대를 차지한 소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 1백 년 전인 1923년에 쓴 〈조선혁명선언〉에서 '강도 일본' 치하에서 "자녀를 낳으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무(誣:속이다)하여 소잔오존(素盞嗚尊:일본신화의 신)의 형제'라 하며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고 일본놈들이 적은 대로 읽게 되며"라고 비판했다.
현재 남한 강단사학계의 '임나=가야설', 즉 임나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까지 차지했다는 임나=가야설은 '한강 이남을 일본영지라고 일본놈들이 적은' 것을 아직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 불신론의 발명
물론 이런 주장은 《삼국사기》·《삼국유사》 같은 우리 측 사서와 전혀 어긋난다. 그러자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사기》·《삼국유사》 불신론'을 만들어 전파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의 초기기록들은 김부식이나 일연이 창작한 가짜'라는 것이다. 김태식은 '5~6세기 후기 가야연맹을 왜에서 임나라고 불렀다'고 썼다.
그런데 평생 300여 편의 학술논문과 30여 권의 학술저서로 임나일본부설을 '진짜' 비판했던 고(故) 최재석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임나왜곡사비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필자는 아무리 읽어도 《일본서기》에서 가야와 미마나(임나)가 동일한 나라라는 기사를 찾지 못하였으며 또한 가야는 물론이려니와 이른바 임나가 '일본부'의 지배를 받았다는 기사도 보지 못하고 있다."
《일본서기》 해당 원문을 다 외운다는 최재석 교수는 《일본서기》에도 가야가 임나라는 '임나=가야설'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재석 교수는 "그렇다면 가야와 미마나(임나)가 동일국이라는 주장은 일본인 학자들의 역사왜곡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라면서 "이러한 왜곡 주장(임나=가야)은 《삼국사기》가 조작·전설이라고 하는 주장과 함께 한국 사학계에도 영향을 주어 한국학계의 통설 또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곧 《일본서기》에도 나오지 않는 '임나=가야설'은 일본인 학자들의 역사왜곡인데 이것이 《삼국사기》 불신론과 함께 현재까지도 한국 사학계의 '통설 내지 정설'로 행세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일본서기는 살리고 삼국사기는 죽이고
고 최재석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임나일본부설을 진짜 비판하자 한국 역사학계는 최재석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국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3권짜리 《역주 일본서기》를 냈다.
연민수를 비롯한 일본 유학파들이 번역했는데 그 1권 말미에 33쪽에 달하는 방대한 참고문헌 목록을 작성했다. 논문 같지도 않은 허접한 왜곡 논문 하나 쓴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이름은 신주단지 모시듯이 모두 써놓았다. 반면 한일고대사 관련해서 한·중·일을 통틀어 가장 많은 논문과 저서가 있는 최재석 교수는 생략했다.
한국 역사학계가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추종 일색이다 보니 이런 반학문적, 반역사적 행태가 버젓이 자행되는 것이다. 그 어느 학문보다 사실을 중시해야 할 역사학계의 이런 행태는 역사학계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비극이자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들은 자정(自淨)이 불가능한 집단이라는 것도 여러 번 확인되었다. 이 집단을 어떻게 해체하고 정상적 역사학계로 대체할 것인가 하는 점이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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