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에어컨 갑질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입추(立秋)가 이미 2주나 지났고, 내일은 '선선한 바람에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이지만 올해는 예외가 될 것 같다. 예년 같았으면 여름 내내 푹푹 찌는 무더위와 열대야(熱帶夜) 이야기가 무성했을 터이다. 그러나 올해는 '열대야'라는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무더운 밤이 계속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무더운 밤이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바람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열대야는 뉴스거리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 비법은 역시 에어컨이다. 적도 부근의 조그마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세계 수준의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만든 리콴유 총리는 "세계 최고의 발명품은 에어컨"이라고 일갈(一喝)했다고 한다. 아마도 에어컨이 없었더라면 싱가포르 국민들은 무더위에 지쳐 축 늘어져 있다가 아직도 후진국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마법 같은 에어컨을 잘 갖추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이번 여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민 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20일 에어컨 갑질에 시달리는 사례를 공개해 충격을 주었다. 한 제보자는 "30℃가 넘는 날씨에 사장이 사무실 에어컨을 고쳐 주지 않아 약간의 언쟁이 있었고 10일 후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고장 난 상태로 7시간 동안 계속 수업하는 바람에 완전히 탈진했다"는 학원 강사도 있었다. "사장이 에어컨을 안 틀어준 지 2~3주가 되어 갑니다. (사장이) 단체 대화방에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더워서 회사를 못 다니겠습니다"라는 눈물겨운 하소연도 나왔다.

솔직히 에어컨을 쉽게 켜지 못하는 사장의 속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올해 연거푸 오른 전기 요금 탓에, 집에서 에어컨을 켜면서 요금 폭탄을 상상하며 손을 덜덜 떤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중엔 '전기 요금 폭탄에 죽나 더위에 쪄 죽나 마찬가지'라는 이판사판(理判事判)의 심정으로 피서를 했다. 무모한 탈원전으로 서민들의 일상에 고통을 가중시킨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도 '에어컨 갑질' 사장님들은 리콴유 총리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빵빵한 에어컨으로 생산성을 높여 전기 요금 이상의 수익을 거두어야만 회사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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