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은 지난 한 세기 대한민국이 격동기를 거치는 와중에도 근·현대 의료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전쟁 등으로 어려웠던 시절 낙후된 후진국 의대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쌓아 올린 금자탑이기도 하다.
매일신문은 의사 출신 의사(醫史)학자 최은경 경북의대 교수(의료인문·의학교육학 교실)와 함께 1923년 경북의대의 출범 당시에서부터 최근 의과대학 체계 개편에 이르기까지 경북의대 한 세기 간의 주요 사건을 짚어봤다.

◆근대의학교육 위한 토대 마련
경북의대는 1923년 9월 개소한 대구자혜의원 부속 사립의학강습소를 모태로 한다. 당시 한강 이남에서 근대 의학교육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대구의학강습소는 이듬해인 1924년 4월 1일 경상북도립 대구의학강습소로 승격·개편됐고,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 지정 의학교로 승격되면서, 졸업과 동시에 무시험으로 조선 내에서 의사 자격을 부여받게 됐다.
이어 1933년 대구의학전문학교 수립, 1946년 대구의과대학으로 승격이 이뤄졌으며, 1947년 문교부 인가 도립 대구의과대학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1948년 6년제 대학으로 체제가 전환되면서 의예과가 설치됐다. 1952년 국립 경북대학교가 개교하면서 경북대 의과대학으로 최종 이관 개편됐다.
최 교수는 "한강 이남에서 의사 양성을 위한 실습, 학생 수련을 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또한 도립의학전문학교로 된 것 자체는 이곳이 기초의학 실험·실습을 할 수 있는 의학 교육기관인 동시에 연구기관이 된 것이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조선에서 기초의학 및 임상의학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의사를 양성시키려는 조선총독부의 구상이 있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후 의료체계 복구 노력
경북의대는 전쟁 후 극심한 혼란 속에서 국내 의료체계 복구와 선진 의료체계 기틀을 마련하는 데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54년부터 UNKRA(유엔한국재건단)는 우리나라 의학교육과 의료 재건을 위해 경북의대와 부속병원을 대상으로 교사 신축, 간호사 교육 등을 지원했다.
또한 록펠러재단 산하 재단인 CMB(China Medical Board)에서 국내에서는 최초로 1953년부터 경북의대를 지원했다. CMB는 1969년까지 경북의대 교수진의 연수 지원을 비롯해 의학도서관 건립, 의학 연구 프로젝트 등 다방면으로 지원했다.
최 교수는 "이규택 경북의대 교수가 CMB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 펠로우십 지원을 받았다"며 "그리고 경북의대 자체적으로 한미재단을 통해 CMB에 시설 지원을 요청한 것이 주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규택 교수의 경우 워싱턴 의과대학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경북의대로 다시 돌아가서 연구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경북의대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며 "이후 경북의대에서 근무하다 미국에 간 분들도 굉장히 큰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렇듯 UNKRA와 CMB를 비롯해 스위스적십자사 의료사절단의 지원 및 자문 등에 힘입어 경북의대는 1950~1960년대 한국 의료의 발전을 주도할 수 있었다.


일례로 경북대 초대 총장인 고병간 교수는 1948년 폐결핵환자에 대한 흉부성형술을 처음으로 시행해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창시자가 된 데 이어, 1949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폐엽절제술을 성공시켰다.
이성행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심장 수술 초기였던 1961년 9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저온법하 개심술'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교육·연구 공간 확장과 동창회 설립
경북의대 동창회는 1945년 대구의학전문학교 출신 가운데 조선인들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구성됐다.
특히 1960년대 초반에는 북미주동창회가 창립돼 학교와 후배들을 위한 지원을 이어갔다.
1987년에는 동창회 장학재단이 별도로 법인화되면서 동문들의 모교 지원이 정례화, 공식화된 계기가 됐다.
이 밖에 의과대학 학생 정원 증가에 따라 교실, 연구실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자 1970년부터 신관 설립을 준비했고 1986년 신관 북편 건물을 완성하면서 경북의대는 현재와 같은 '□형' 모양을 갖추게 됐다.
◆교육과정 개편에 앞장선 경북의대
경북의대는 교육과정 개편을 선도적으로 실천하면서 글로벌 의학 교육 개편 흐름에 부응할 수 있었다.
최 교수는 "경북의대를 비롯한 대구경북 의과대학들은 외국이나 서울에서 실시하던 의학 교육 세미나, 블록강의 같은 교육과정을 선도적으로 실천했다"며 "의학 교육에서 새로운 의제들이 생길 때 교육개혁을 앞장서서 실천했고, 소그룹 PBL(problem-based learning) 등을 제일 처음 대구경북이 도입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의학 교육과 관련해 처음으로 전임연구 인력을 도입한 곳이 서울에서도 몇 군데 되지 않았을 때 경북의대가 선제적으로 도입했었다"고 분석했다.

◆학정동 캠퍼스 오픈…교육 공간 확장
학교가 점차 성장하면서 동인동 캠퍼스의 노후화 및 공간 부족 문제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에 경북대는 2005년 정부로부터 칠곡병원, 지역암센터, 노인보건의료센터의 건립인가를 얻었고 2007년 착공에 들어갔다. 2010년 7월 관련 공사를 준공한 끝에 2011년 1월 3일 칠곡경북대학교병원이 개원했다.
최 교수는 "학정동 캠퍼스를 통해 교육 환경이나 시설 측면에서 과거와 상상할 수 없게 좋아졌다"며 "현재 의학 교육에선 교육 공간, 실습 공간 등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한데, 학정동 캠퍼스 오픈으로 그런 점에 잘 부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과대학 체제 전환으로 맞은 변화
정부 정책에 발맞춰 경북의대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전환과 의과대학으로의 복귀를 경험하면서 교육 체제, 학내 문화 등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경북의대는 2004학년도부터 의예과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았고, 2006년 3월 정원 110명의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했다. 이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은 2017년부터 의과대학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최 교수는 "과거 의과대학 체제에서 의예과 2년은 문리대 소속이었지만 의전원 이후엔 의과대학 소속이 됐다"며 "즉 과거 의과대학 체제로의 답습, 복귀가 아니며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교양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된 새로운 체제가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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