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공분을 사는 한국 정당정치가 존속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마땅한 대체재가 없다는 것, 그리고 수세에 몰리면 국민의 환심을 사고자 이벤트를 벌인다는 것. '평가' '혁신' '비상 대책' 운운하는 위원회 활동이 후자의 반복된 관행이다. 그마저도 고질적인 계파 싸움 탓에 대개 외부 인사를 불러 과업을 떠맡긴다. 당의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거나 위원회에 전권을 주겠다는 식의 미사여구와 함께. 금번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굳이 '김은경 혁신위'로 불린 맥락도 그러하다.
그러나 파쟁으로 날을 새우는 170석의 제1당이 혁신위에 한마음으로 권한을 줄 리 없었다. 더욱이 혁신위원장도 당 대표의 친위가 될지 읍참마속의 칼을 휘두를지 속내를 들켜 버렸다. 예상대로였고 혁신위는 실패의 낙인과 함께 조기 퇴장했다. 그간 위원장의 설화나 가내사를 실패 원인으로 질타하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러나 혁신안이 반듯했으면 잠잠해질 일이었다. 즉 실패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기득권을 혁신하기는커녕 더욱 강고한 성역으로 만들어 놓은 것. 그로 인해 성역의 체제가 공당을 사유화하고 끝 모를 계파 갈등을 제도화했다는 것이 본질이다.
김은경 혁신안의 무엇이 반혁신적일까? 혁신안 전문을 곱씹은 상념을 독자들과 나누면 다음과 같다. 우선 혁신안은 위선적이다. 혁신위가 민주당의 20대 대선 패배와 당 대표의 사법 위기로부터 비롯되었음은 자명하다. 여기에 코인 사건과 돈 봉투 의혹이 곁들여졌다. 민주당의 기득권은 파벌 공동체인 당 대표의 허물을 들추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추문이 대선 패배의 주원인이라는 것이 세상의 중론이다. 또한 당 대표의 사법 위기에 맞서 방탄 장벽을 세우고 의정을 교착시켜 국민의 지탄을 불렀다. 그러나 혁신안은 대선 평가와 당 대표의 사법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정치지도자의 정치적 책임 윤리와 도덕적 윤리를 모두 면책한 셈이다. 이것이 혁신위가 지향한 '윤리 정당'인바, 그 위선은 기득권에 대한 맹종에 다름 아니다.
다음으로 혁신안은 반정치적이다. 혁신위에 민주당은 '250만 권리당원이 있는 OECD에서 가장 큰 정당'이다. 정당정치의 희망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런 형식논리와 짝을 맞추어야 하는 상황논리라는 게 있다. 국민에게 민주당은 '당 대표와 일체화된 개딸 등 강성 팬덤에게 포획된 정당'이다. 과거의 팬덤은 정치 개혁의 전령사였지만 오늘의 팬덤은 기득권의 파수꾼이다. 이들에게 '당 지도부 선출 권한의 70%'를 부여하는 혁신안은 공당을 파당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다. 아울러 혁신안은 당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팬덤의 폐해에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는다. 온건 지지층의 이탈을 부추기는 이러한 반정치적 행태가 총선에서 어떤 과보를 불러올지 우려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혁신안은 몽상적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 의제'를 대표하는 총선 후보를 선출하자는 취지는 공감을 자아낸다. 문제는 '국민 중심 미래선거인단'이나 '독립적인 미래심사인단' 같은 절차와 주체의 모호함이다. 즉 현 지도부가 공천을 관리하는 상황을 전제하면 이 또한 계파 갈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부언하면 공천을 목전에 두고 새로운 리그와 경기 규칙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시된다. 또한 어느 범위까지 미래 의제인지, 비례대표와 미래대표 선출이 왜 차별화되어야 하는지 논박이 뒤따를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득권으로부터 독립된 미래선거인단과 미래심사인단을 구성하고, 줄 서지 않는 미래후보를 선출하는 절차는 장기 과제로 제안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빈번한 혁신위나 비대위 활동은 정당이 자정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 과정을 합당하게 수행한다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민주주의 비용임이 마땅하다. 바꾸어 말하면 고상한 용어로 치장했으나 혁신의 대전제를 저버린 방안은 동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헛된 꿈을 꾸면서 헛된 꿈인지 모르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신기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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