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성주 성산가야, 상주 고령가야는 왜 빠졌나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경.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경.

고령군 지산동고분군 등 우리나라 남부 7개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운데, 성주 성산가야와 상주 고령가야는 빠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성산가야와 고령가야는 삼국유사에 6가야 구성국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분군도 존재한다. 그런데 왜 세계유산에 등재되지 못했을까?

이유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다른 가야고분군들과 차별되기 때문이다.

어떤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한 나라에 머물지 않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하고, 가야 각국의 중심지에 축조된 고분군은 교역로를 따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등 가야의 문명을 실증하는 독보적 증거로 평가받았다.

문화재위원회도 "(등재된)가야고분군과 부장된 유물들은 가야 시기의 여러 문화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역사적 증거에 해당한다"고 했다. 세계유산 등재기준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을 만족한다.

이에 반해 성산가야는 발굴조사 결과 이른 시기에 신라화된 지역임이 밝혀져 가야 계통이 맞는지 회의적 시각도 많다.

성주는 후기가야 맹주였던 대가야의 고령군 바로 옆동네인데도 5세기 후반부터는 낙동강 건너편 대구 비산동·내당동고분과 유사성이 강해 대구 지역을 지배하던 신라의 영향력 아래에 드는 것이 선명해 보인다.

또 대가야 쪽에서도 국경을 맞댄 고령군의 북쪽에 산성을 쌓아 대비한 모습을 보인 것과, 성산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성주양식 토기류가 낙동강 중류지역과 칠곡, 대구 서부는 물론 멀리 안동까지도 일부 확인돼 이들 지역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고 있다.

출토 유물도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음을 보여 당시 신라와 적대관계였던 인접한 대가야와는 문화적으로 교류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상주 함창읍 고령가야국사적비.
상주 함창읍 고령가야국사적비.

상주 고령가야는 실제 가야국과는 무관하다는 설이 우세하다. 고령가야가 있었다는 옛 함창군(현재의 상주시 함창읍·공검면·이안면) 지역은 원래부터 신라의 영역(진한의 사벌국 지역)에 속했다.

신라 첨해왕 때 사벌국을 정벌해 고동람군(古冬攬郡)을 설치했고, 이 고동람군이 757년 경덕왕 16년 행정개편으로 고령군(古寧郡)으로 개명됐다.

신라 말기에 신라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고령(古寧) 지역 호족세력이 그 명분으로 가야를 참칭했고, 940년 고려 태조 23년에 5가야의 명칭을 변경하면서 '고령가야(古寧伽倻)'라는 이름이 부여되어 옛 가야국 중 하나인 양 와전되었다.

고령가야라는 나라 이름이 생겨난 것은 가야 시대로부터 한참 후대인 고려 초의 일이었던 셈이다.

다만, 대가야 패망 이후 충주 일대에서 활약한 우륵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다수의 가야인들이 가야에서 북쪽 지역으로 이주당했다는 기록이 있어, 함창 일대의 호족세력들이 이주한 가야인의 후예일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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