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민뿐 아니라 갈등 상황에 놓인 전세계 사람들이 제 작품을 통해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것처럼요."
우크라이나 출신 마리아 체르노주코바(31) 작가의 전시가 오는 30일까지 대구 수성구 갤러리 전 B관에서 열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회화와 시각디자인 석사를 마친 그는 우리나라 정부가 각 나라에서 소수 인원만을 선발해 장학금과 비용을 지원하는 한국 대학원 장학생 프로그램(KGSP)에 선발된 수재다. 2016년 한국에 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무리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 문화에 젖어들어도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고민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어릴적 키웠던 도베르만. 작품 속 도베르만은 일월오봉도, 달항아리, 전통 창살문양 등 아무리 한국적인 요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개의 모습을 벗어날 수가 없다.
작가는 "한국 문화에 대해 하나 둘 배워 나가며 얻은 많은 감상들이 작품의 영감이 됐다. 하나의 캔버스 안에서 다채로운 문화가 뒤섞여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그의 작업은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180도 바뀌었다. 전쟁으로 아픔을 겪고 있을 고향 사람들에게 행복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 먹은 것. 얇은 붓으로 세밀하게 반복해 그은 선들은 마치 마음 속 생채기들을 희망으로 채워나가는 듯하다.
"지금의 전쟁은 사실 2014년부터 시작됐어요. 그 때 바로 옆집이 포탄을 맞는 장면이 생생하고 피난 생활도 해봐서 전쟁의 공포를 너무나도 잘 알아요. 최근까지도 친구들의 죽음을 겪었고, 부모님이 아직 우크라이나에 계셔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고향에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갈등 상황에 놓인 전세계 사람들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저 역시 작업하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에는 우크라이나를 의미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우크라이나에서 결혼할 때 날려보내는 사랑과 평화의 상징 '흰 비둘기'나, 국화(國花)이자 행복을 의미하는 '해바라기'가 자주 등장한다. 아름다운 우크라이나의 하늘도 배경에 담았다.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의 작품들이지만, 작품 속 여성들의 눈은 어쩐지 공허하고 슬퍼보인다. 작가는 "그림을 최대한 밝게 그리려고 노력하지만, 직접 겪은 두려운 경험과 지금의 상황 때문인지 마냥 행복한 표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의도하고 그린 게 아니지만 절제된 눈빛 속에 지울 수 없는 슬픈 기억들이 비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작품 제목인 '마이 유토피아(My Utopia)'처럼 고통과 슬픔 대신 행복이 가득한 세계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더 감동을 줄까 고민하는 한편, 색이나 기법적으로도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점차 발전해나가는 모습이 보여지는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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