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치악산' 제목 바꾸라는 원주시, '곡성' 기회로 삼은 곡성군

영화 '곤지암'은 정신병원 소유주와 법정공방, 영화 '밀양'은 전도연 칸 영화제 수상 후 밀양시 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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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치악산' 포스터

괴담 '18토막 살인사건'이 모티브인 영화 '치악산'이 9월 13일 개봉할 예정인 가운데, 치악산 소재 지자체인 원주시가 이미지 훼손을 우려, 제작사에 영화 제목 변경을 요구했다.

▶24일 원주시는 사실이 아닌 괴담 수준의 내용으로 인해 원주 지역 대표적 관광자원인 국립공원 치악산 및 지역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영화 제작사에 전달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그러면서 원주시는 최근 제작사와 만나 영화 제목 변경을 요구했고, 또한 '실제가 아닌 허구'라거나 '지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문구를 영화 도입부에 삽입토록 하는 등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영화 치악산은 1980년 치악산을 배경으로 18토막이 난 시신 10구가 잇따라 발견, 비밀 수사가 진행됐다는 내용이다. 물론 치악산이라는 장소와 80년대라는 시기, 그리고 토막 살인 사건 수사까지 모두 허구다.

그럼에도 원주시는 치악산이라는 영화 제목 및 살인 사건이라는 내용 때문에 치악산 둘레길 같은 관광지는 물론, 치악산 한우·복숭아·배·사과 등 생산 상품에 대한 이미지 타격이 우려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주시는 영화 제목 변경 및 관련 문구의 영화 삽입 등 시의 입장 및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제작사를 설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원주시의 제목 변경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개봉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현재 제작돼 있는 영화 포스터와 홍보 영상 등은 물론 프로모션 전반에 수정이 가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원주시가 입장 및 요구를 언론에 밝힌 24일로부터 불과 1주 뒤인 이달 31일에 당장 언론·배급, VIP 시사회 등의 일정이 잡혀있는 등의 업계 상황을 감안하면, 원주시가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고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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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곤지암' 포스터

▶치악산과 비슷하게 '실제 지명'을 넣은 공포 영화로는 우선 2018년 개봉한 '곤지암'이 있다. 관객 267만명이 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에 있었던 '곤지암 남양정신병원'과 이곳이 '국내 3대 흉가'로 꼽히고 미국 CNN이 '세계 7대 소름 돋는 곳'으로 선정하는 등의 화제성이 모티브가 됐다.

영화 치악산이 허구가 기반이라면, 곤지암은 실제 장소와 괴담을 차용한 게 다르다.

다만 영화 곤지암 개봉 전에도 일부 주민들의 반발 분위기가 있었고, 특히 정신병원 건물 및 부지 소유주가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 주목됐다.

소유주는 "영화 곤지암 제작진이 개인 사유지에 무단침입했고, 영화로 인해 진행 중인 매각에 차질이 생겼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영화 곤지암 측은 "부산 소재 한 폐교에 세트장을 따로 만들어 영화를 촬영했다"고 반박하면서 "마케팅 과정에서 본 영화가 허구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임을 지속적으로 밝혔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곤지암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영화 곤지암은 소유주 개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므로 소유주의 명예와 신용이 훼손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또 "영화는 명백히 허구의 내용을 담고 있는 공포 영화에 불과할 뿐이고, 부동산에 대한 허위 사실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괴담은 영화가 제작되기 한참 전부터 세간에 퍼져 여러 매체에서도 보도됐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관객들이 허위인 '괴담'과 팩트(사실)인 '현실'은 구분할 줄 아니까, 그 판단은 맡기면 된다는 얘기였다.

이 사례에 비춰보면, 영화 치악산의 경우 치악산이 소재지이지만 소유주는 아닌 원주시가 명예훼손 류의 법적 대응은 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곤지암의 경우 '영화 내용이 허구'라는 입장을 마케팅 과정에서 꾸준히 밝힌 것을 감안, 치악산의 경우 원주시가 요구하는 '실제가 아닌 허구' '지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등의 입장을 영화 도입부는 물론, 개봉까지 남은 10여일 동안 마케팅 등의 과정에서 밝히는 정도의 협의가 현실적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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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포스터

▶또 다른 사례는 2년 더 앞서 2016년 개봉한 '곡성'이다. 관객 687만명을 모으며 흥행 대박 기록을 세웠다.

영화 곡성은 내용은 곡성군과 전혀 상관 없으나, 촬영지 상당수가 곡성군에서 촬영됐다.

영화 곡성 역시 촬영 시기에 일부 주민들의 우려가 나오기도 했는데, 당시 전남 곡성군수였던 유근기 전 군수(재선, 이어 3선 불출마 선언)가 한 지역 일간지에 지자체와 영화 둘 다 윈윈(Win-Win)하는 내용의 기고를 실어 화제가 됐다.

유근기 전 군수는 영화 곡성 개봉을 열흘여 앞뒀던 2016년 4월 22일 실린 '곡성(哭聲)과 다른 곡성(谷城)이야기'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곡성'이 소란스럽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다"라며 우선 "'곡성(谷城)'에 대한 이미지에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작사측에 한자를 함께 적어 표기하도록 했고, 영화 상영시 자막에는 '본 영화 내용은 곡성지역과는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내용'임을 내보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려를 뒤집어 생각하면 기회가 된다"며 "영화와 우리 지역이 무관하다고 아무리 주장한들 사람들의 머릿속 연상마저 막을 길은 없다. 우리의 낙천성을 믿고 역발상을 통해 우리 군의 대외적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우리 군으로서는 남는 장사"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오히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군을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사라진 제도지만 우리 군은 '범죄 없는 마을' 사업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마을을 배출했다. 2000년부터 60% 이상 마을이 9회 연속 선정됐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영화 속 음산한 기운과 우리 군을 함께 연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오히려 우리 곡성군의 봄날을 경험한다면 영화와는 완벽한 대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근기 전 군수는 "영화 '곡성'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우리 '곡성'에 오셔서 따뜻함을 주는 즐거움을 한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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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포스터

▶향후 영화의 성공 여부가 관건일 수도 있다. 호평을 받으면 내용은 별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2007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 및 전도연·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양'의 경우 유괴 및 살인 사건과 민감한 종교 문제 등이 소재로 쓰여 밀양 주민들이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밀양시는 영화 주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밀양역에 전시했고, 밀영 촬영지와 관광 명소를 묶은 관광 안내 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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