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은 철학에서 많이 다루지만 매우 문학적인 텍스트다. 형식적으로 희곡의 구조를 띠고 있는바, 서막·본막·후막으로 나눌 수 있고 본막은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여섯 사람이 에로스(신)에 대해 벌이는 대화로 되어 있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는 예전에 디오티마란 여성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인용하므로 '대화 속의 대화'란 이중구도를 펼친다. 대화 내용도 신화와 개인적인 주장으로 점철된 것이 허구의 성격이 강하다.
플라톤은 <향연>을 통해 뭘 주입하거나 입증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자료만 던져 주고 나머지는 독자에게 일임한다. 대화의 대상인 에로스의 정체성마저 발언자들마다 제각각이다. 파이드로스는 가장 오래된 신이라 하고, 아가톤은 가장 젊은 신이라 하고, 파우사니아스는 두 명의 에로스가 있다 하고, 소크라테스는 신이 아니라 정령이라고 한다. 하나의 결론을 내거나 객관적인 메시지를 추론해 낼 수 있는 정황이 아니다.
말하자면 <향연>은 각자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자유롭게 펼치는 사랑론의 잔치다. 어차피 사랑은 객관화하고 논증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소크라테스의 사랑론을 주목한다.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의 임무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되 '아름다운 것 안에서 뭔가 생산하는 일'이라고 전제하고 그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다. 즉 '아름다운 몸→아름다운 영혼→아름다운 법과 관행→아름다운 앎→아름다움' 자체의 순이다. 여기서 소위 '사랑의 사다리'(ladder of love)가 나오는데, 사랑의 대상이 아름다움이므로 미의 사다리이기도 하다.
에로스의 첫 대상인 아름다운 외모는 후손을 낳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그라지고 싫증이 난다. 다음 단계인 아름다운 영혼으로 올라가야 한다. 방법은 아름다운 몸의 특질을 그대로 마음에 담아내는 것이다. 아름다운 외모는 균형·조화·부드러움·생기 같은 특질이 있는데, 아름다운 영혼은 마음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까 마음이 조화롭고 순정하며, 사심 없이 자의와 기쁨으로 사랑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참된 미는 한 송이 들꽃처럼 이유나 목적 없이 그 자체로 좋듯이 아름다운 마음에는 이유나 목적이 없다. 이렇게 외적 미는 그 특성이 추상화되어 내적 미로 상승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영혼이란 결국 善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플라톤에게 미는 미덕과 다르지 않다. 결국 사랑의 두 번째 단계는 선이나 선한 사람을 사랑하고 스스로 선을 행하는 차원을 말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의 범주를 벗어나 知의 미를 사랑하고 마침내 미 자체(이데아)를 사랑하는 4, 5단계로 올라가라고 하면 누가 엄두를 낼 수 있을까. 여기서 미는 다시 眞이 된다. 사실 사랑의 마지막 단계는 신을 사랑하는 신앙인들이나 가능할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플라톤의 절대적 사랑(이데아)은 기독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미의 사다리는 진선미를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 같은 것이다. 원대한 이상이지만 현실성이 희박하다는 말이다. 소위 플라토닉 러브도 여기서 나오지만 통상 이해하는 '정신적인 사랑'보다는 차원이 훨씬 높다. 미의 사다리에서 수렴되는 플라톤식 미학은 외모지상주의에다 감각적 사랑이 횡횡하는 이 시대에 화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럴수록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는 정면교사의 의미는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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