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집단민원에 대한 '잘못된 신호'

김진만 기자
김진만 기자

지방자치 시대, 주민들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커지면서 각종 민원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만큼 민원의 성격도 복잡·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다수가 관련된 집단 민원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상적인 절차가 무시되고 선출직인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찾아 해결하려는 경우가 잦다. 시위나 농성 등 격렬한 집단행동을 동반하거나 물리적 피해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자치단체에 대한 불신을 불러와 신뢰 하락과 통합 저하로 지역 발전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경북 경산시도 근래 집단 민원들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 용성면 관광농원 조성, 자인면과 와촌면의 폐기물재활용 업체의 사업계획 승인 건 등이 그 예다.

이들 집단 민원의 공통점은 주민들이 "주변 환경훼손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해가 우려된다"며 반대 집회나 시장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사업자들은 "적법한 행정절차를 밟아 정상적으로 승인이 났는데 '무조건' 반대하는 주민 민원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선다.

또 주민들은 시가 별다른 논의 과정 없이 승인을 해 주고 추후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의 행정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담당 부서에서는 해당 사업들은 주민 의견 수렴 과정 없이도 관련 부서의 협의를 통해 승인이 가능해 관련 법과 행정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는 소통의 기회마저 없다. 여기에 집단 민원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경산시 공무원들의 역할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는 조현일 경산시장이 집단 민원을 제기한 주민들을 만나 '약속'을 한 것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주민들의 입장에서 주민 편이 되어 해당 업체의 허가가 절대 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지난해 9월 자인면 폐기물재활용 인허가 반대 집회에서) "주민들의 반대 의견이 있었으면 설득하고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나서 직접 해결하겠다."(지난 16일 용성면 부일리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같은 시장의 약속은 집단 민원 해결에 앞장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겠지만 경산시 공무원들이나 앞으로 경산에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 자칫 경산에서는 주민들이 반대하면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시장은 28일 열린 민선 8기 출범 시민들과의 청(聽)책 토론회에서는 "화장장과 동물 화장장도 필요하다면 공론화해서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치단체장은 주민 기피 시설이라도 필요하다면 주민들을 찾아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집단 민원이라고 해서 주민 편만 되고 많은 돈을 투자한 민간사업자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이해당사자 간 소통을 통해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중재를 하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이렇게 해야 경산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되고, 공무원들이 자율성을 갖고 일하며 시장을 믿고 따를 것이다.

집단 민원은 다양한 가치와 이해 충돌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발생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고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공론의 장이 열리고 성숙한 민주주의가 발전해 나가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경산시의 민원조정위원회가 '답정너'나 '들러리' 기구가 아니라 갈등과 집단 민원을 합리적으로 조정·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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